제목: 따르릉~ & 각고의 30년 그리고 찾아 온 친구와 선물 &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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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산학교 작성일13-11-14 23:58 조회1,489회본문
[사연 1 : 따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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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오전((목) 10시 경 학교(권등암장)로 출근준비를 하던 중, 한 통의 전화가 온다.
예~ 등산학교입니다.
권기열씨 되시죠?
예! 그렇습니다.
기열아~! 나 혁남이다.
잉! 혁남이~~ 권혁남이~말야?
그래! 맞아~~
뭐!~ 정말 혁남이냐?~~
대략 20년 만에 죽마고우의 목소리였다.(나와 동갑내기)
어쩌구, 저쩌구~ @#$%^&*~~~...
아직도 충정로 경기대학교 쪽이 너희(혁남) 집이냐?
어~ 너(기열) 우리 집 아직 기억하네~
(20대 중, 후반에 산동네 개발로 혁남이는 경기대 쪽으로, 나는 인왕산 밑에서 독립문으로 이사 함.)
(그리운 산동네 며칠 후, 혁남이와 함께 살던 동네를 가기로 했다. 지금은 자연과 동화된 부촌으로 변한 최고의 동네가 됐고,
나의 자식인 자일이와 비나가 현재 이쁜 집에서 살고 있다.^^)
야~ 혁남아~
그런데 너 목소리가 왜 그러니~
어~ 얼마 전에 몸이 안좋아 수술을 했거든~
아니~ 왜!
흉선암에 걸렸었거든~
뭐~ 흉선암이 뭐야~(난생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기열 : 야~ 그럼 지금 집이냐~?
혁남 : 응~
기열 : 그럼 어서 안산 권등암장으로 와~
혁남 : 거기가 어딘데~
기열 : 너희 집에서 !@#$으로 오면 돼~
30분 후 권등암장에서 만났다. 드디어...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 친구는 나의 죽마고우(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란 벗.)에 다가 등반 파트너였기에 더욱...
이 친구와에 관계를 아주 조금만 이야기해 보자.(모두 얘기하면 글만 대략 20시간 정도...^^)
우선 같은 동네에서 자라(혁남과 기열 집이 20M 거리) 초, 중학교를 함께 다녔으며...
더욱이 같은 삼형제다.
권승열, 권석열, 권기열
권혁철, 권혁남, 권혁민
더욱이 형제들 끼리도, 또한 어머님들과도 각별히 친하신 사이였다.
그러다 보니 더욱 돈득한 관계였으며, 내가 인쇄분야에 들어 온 후, 이 친구도 인쇄분야에 들어 와,
을지로, 충무로에서도 함께 다닌 철친 중 철친이였으니, 둘의 사이는... 정도를 벗어난 사이였다.
그러나 서로 등반활동은 다른 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1982년 4월 4일 추락사고를 당한 후(20대 초, 중반), 시간이 지나, 기존에 활동하던
산악회에서(백봉산악회) 부상장애가 심하니 등반활동을 그만하라는 걱정어린 선배님들의 간곡한 권유가 있었고.
싫다했지만... 간곡한 선배님들의 진심어린... 그 정도로 심각한 부상 후유증이였던 사고였다.
그 후, 이 친구가 상황을 알고 자기 팀에서 활동하자고 했고, 그 팀이 바로 현암산악회였다.(선인봉의 현암길 개척 팀)
혁남이는 현암길 개척 당시 주도적인 역활을 한 개척자이며 그 당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루트였다.
중략은 생략하고...^^
나는 어릴적부터 선인에서 바위를 배운 선인파이다.
지금 친구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선인파(도봉산), 인수파(북한산)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고,
한마디로 인수파는 선인파 얼굴도 못 쳐다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인파들이 월등히 등반을 잘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인수파 분들께는 죄송...^^)
어릴적도 마찬가지였지만 물만난 뭐처럼 전국의 산야를 바람따라, 구름따라 날개달고 휘젓고 다녔다. 그 당시~~
그때는 지금과 달리 예절, 예의 선, 후배간에 정도와 내 팀에서 내 모든 등반을 불태우겠다는... 아~ 한마디로,
사람사는 맛이 있었고, 진정한 눈물이 있었던 시절이었다.(첫 인연을 끝가지 중시하는...)
지금은? 이~ 아름다운 지면에다가는... 표현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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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2 : 각고의 30년]
각고 :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어려움을 견디며 몸과 마음을 다하여 무척 애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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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권등암장을 1983년 5월에 개척을 시작으로 정확히 30년만인 2013년 11월 14일(목)이 되서야 나의 모든 플랜의
목표가 실현되는 뜻깊은 날이다.
단순히 벽에다 39개의 루트를 개척하고마는 것이 아닌 높이 100여M, 폭 200여M에 달하는 바위면적의 주변환경의 부실한
보존살리기 작업까지... 그리고 행정기관과의 협력과 교류에 관한 플랜까지... 모두 완성되는 날이되었다.
[몇 번 열거했던 본문을 수정하여 발췌해 본다.]
권등암장을 1983년 5월부터 개척하기 시작한 후, 단독으로 개척한 세월이 오늘로서 30년이 걸렸다.
개척할 당시 이곳을 암벽등반의 레저타운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신념하에, 3년이면 욕심 이상의 결과가 이루어지겠다는
희망으로 개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30년이란 세월이 걸리고야 말았다.
시작할 당시 30년이 걸리는 개척이었다면 절대 손도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지면에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으나...
(본 등산학교 홈피의 "권등암장 개척기"를 읽어 보면 30년간 필자의 땀 흘린 기록이 약 50% 정도는 기록되어 있다.)
[권등암장 개척기 중...]
세월은 흘러 “권등암장”은 등반가들의 증가와 더불어 산의 대상이 일반적인 사람에게도 건강증진은 물론 일상적인 생활 속의
공간으로 다가오는 시기가 시작되었고 이들의 발걸음은 “권등암장”의 바윗길 주변까지 이르게 된다.
그로인한 크고 작은 사고와 비등산로의 길들이 생겨나는 것을 감지한 필자는 그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바위 길을 안전하게
정돈함은 물론 토사가 무너지는 곳마다 30년 동안 200여 차례가 넘는 주변공사를 착수하게 된다.
수천 개의 돌을 주워 모으고 그것도 모자라 300만원(돌 값)이 넘는 자연석을 채석장에서 사옴에 있어 또 다른 험난한 등반이
시작되었다.
구입한 돌들은(2개 이상은 못 들음) 물론 40㎏의 시멘트를 포함(약 200포대 이상) 모래, 왕사 등을 산 밑에서 지고 올라오는
“권등 동문”들의 노고와 이것들을 배합하기 위한 엄청난 분량의 물의 공급 등은 주변공사의 작업과정은 거두절미하더라도
이러한 준비과정은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만큼 끝없는 수행의 길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권등인의 자발적 참여로 지금의 “권등암장”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사막의 모래를 퍼내 바다로
만들었다 표현해도 필자에게만은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재미난 예를 정리해 봤다.)
1. 30년간 “권등암장”을 개척한 총 경비는 필자의 사비만 오천만원 이상 들었음.
2. 개척 및 보수에 의한 권등암장을 오른 횟수는(30년간) 9천회 이상 오름.
3. 일당 : 하루 노동 10시간 이상, 인건비 10만원 X 9천회 이상 = 9억 이상 무상으로 벌었음.^^
끝으로 30년간 최선을 다해 일구어 냈지만 최선에 의한 부족함과 모자람도 있을 것이라 자처해 보며 오늘에 "권등암장"이
있기까지 참여해 주신 권기열등산학교 동문 여러분과 그간 수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말씀에 감사의 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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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3 : 그리고 찾아 온 친구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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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를 한 달 앞두고는 날짜가 가질 않는다.
달력에 전역에 날을 표시한 부터는...
한 번쯤 누구나 경험해 봤을쯤일께다.
그럿듯 이번주 월요일에는 권등암장에 모든 플랜이 잡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화요일에도...
수요일에도...
잡히지를 않는다.
저녁 10시까지 해도...
항시 오늘은 끝날줄 알았는데...
정말 미치겠다.^^
오늘(목요일) 드디어 잡았다. 딱 30년 6개월만에...
그것도 30년 전 권등암장의 첫 개척루트인 "어린아이길"의 첫 볼트(위로 더 올림) 보수작업 즉, 권등암장의 마지막 플랜을
마치는 곳이 우연인지 첫 개척루트인 "어린아이길"에서 대미를 장식할줄이야...^^
어제(수요일)까지만해도, 이~ 30년 세월의 대미의 순간을 혼자 맞이하는 것에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기는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20년만에 잊쳐졌던 친구가 찾아왔고, 그를 만났다. 그 이상의 친구를 말이다.
이보다 더한 선물과 그간에 보상이 어디있겠는가 말이다.
아직은 회복 중인 상태이나 다음주 부터 나와 등반을 서서히 끌어 올리기로 했다.
(5월 8일 수술했다 함. 연대 세브란스에서, 나도 6월 15일 그 곳에서 수술했는뎅/자전거 사고로...)
이것은 이 친구가 나에게 찾아 온 선물을 넘어 보너스까지 더 받은 선물이며 나의 축복이 아니겠는가 싶다.!
- [내 친구 혁남이와 30년의 격동과 각고의 시간을 모두 마치고] -
[사연 4 : & 보람]
서대문 구청과 3년에 걸쳐 등산학교와 권등암장에 관한 건의와 협력 그리고 교류 끝에 권등암장 밑에 최신형 장비가
탄생되었다.^^
그 최신형 장비는 바로 해우소이다.^^
정말 멋진 장비를 권등암장에서 구입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위치 선정에 있어 견해들이 각각 있었으나 자연적 요소와 자락길에 관한 여러가지 면에서 적절한 장소에 선택되었다.
대한민국 암장 근처에 이렇게 아름답고 시설 좋은 해우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남...
여...
문을 열고 들어 가면...
난방 스팀과 손 건조기(실내가 무척 따스하다.)
깨끗한 객실^^
뜨거운 물까지 꽐~ 괄~
앞으로 권등인 모임장소는...
이 곳에서...^^
오늘 나보다 행복한 이... 있을까
앞으로도 말이다.^^
p.s :
1. 서대문 구민을 위한 안전등산교실 교육
2. 해우소 탄생
3. 3가지 중, 내년에 마지막 한 가지가 실현될 날을 기다리며...
<3번은 실현되면 발표할께요.^^>
구청장님과 행정기관 담당자 여러분 그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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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오전((목) 10시 경 학교(권등암장)로 출근준비를 하던 중, 한 통의 전화가 온다.
예~ 등산학교입니다.
권기열씨 되시죠?
예! 그렇습니다.
기열아~! 나 혁남이다.
잉! 혁남이~~ 권혁남이~말야?
그래! 맞아~~
뭐!~ 정말 혁남이냐?~~
대략 20년 만에 죽마고우의 목소리였다.(나와 동갑내기)
어쩌구, 저쩌구~ @#$%^&*~~~...
아직도 충정로 경기대학교 쪽이 너희(혁남) 집이냐?
어~ 너(기열) 우리 집 아직 기억하네~
(20대 중, 후반에 산동네 개발로 혁남이는 경기대 쪽으로, 나는 인왕산 밑에서 독립문으로 이사 함.)
(그리운 산동네 며칠 후, 혁남이와 함께 살던 동네를 가기로 했다. 지금은 자연과 동화된 부촌으로 변한 최고의 동네가 됐고,
나의 자식인 자일이와 비나가 현재 이쁜 집에서 살고 있다.^^)
야~ 혁남아~
그런데 너 목소리가 왜 그러니~
어~ 얼마 전에 몸이 안좋아 수술을 했거든~
아니~ 왜!
흉선암에 걸렸었거든~
뭐~ 흉선암이 뭐야~(난생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기열 : 야~ 그럼 지금 집이냐~?
혁남 : 응~
기열 : 그럼 어서 안산 권등암장으로 와~
혁남 : 거기가 어딘데~
기열 : 너희 집에서 !@#$으로 오면 돼~
30분 후 권등암장에서 만났다. 드디어...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 친구는 나의 죽마고우(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란 벗.)에 다가 등반 파트너였기에 더욱...
이 친구와에 관계를 아주 조금만 이야기해 보자.(모두 얘기하면 글만 대략 20시간 정도...^^)
우선 같은 동네에서 자라(혁남과 기열 집이 20M 거리) 초, 중학교를 함께 다녔으며...
더욱이 같은 삼형제다.
권승열, 권석열, 권기열
권혁철, 권혁남, 권혁민
더욱이 형제들 끼리도, 또한 어머님들과도 각별히 친하신 사이였다.
그러다 보니 더욱 돈득한 관계였으며, 내가 인쇄분야에 들어 온 후, 이 친구도 인쇄분야에 들어 와,
을지로, 충무로에서도 함께 다닌 철친 중 철친이였으니, 둘의 사이는... 정도를 벗어난 사이였다.
그러나 서로 등반활동은 다른 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1982년 4월 4일 추락사고를 당한 후(20대 초, 중반), 시간이 지나, 기존에 활동하던
산악회에서(백봉산악회) 부상장애가 심하니 등반활동을 그만하라는 걱정어린 선배님들의 간곡한 권유가 있었고.
싫다했지만... 간곡한 선배님들의 진심어린... 그 정도로 심각한 부상 후유증이였던 사고였다.
그 후, 이 친구가 상황을 알고 자기 팀에서 활동하자고 했고, 그 팀이 바로 현암산악회였다.(선인봉의 현암길 개척 팀)
혁남이는 현암길 개척 당시 주도적인 역활을 한 개척자이며 그 당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루트였다.
중략은 생략하고...^^
나는 어릴적부터 선인에서 바위를 배운 선인파이다.
지금 친구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선인파(도봉산), 인수파(북한산)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고,
한마디로 인수파는 선인파 얼굴도 못 쳐다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인파들이 월등히 등반을 잘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인수파 분들께는 죄송...^^)
어릴적도 마찬가지였지만 물만난 뭐처럼 전국의 산야를 바람따라, 구름따라 날개달고 휘젓고 다녔다. 그 당시~~
그때는 지금과 달리 예절, 예의 선, 후배간에 정도와 내 팀에서 내 모든 등반을 불태우겠다는... 아~ 한마디로,
사람사는 맛이 있었고, 진정한 눈물이 있었던 시절이었다.(첫 인연을 끝가지 중시하는...)
지금은? 이~ 아름다운 지면에다가는... 표현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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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2 : 각고의 30년]
각고 :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어려움을 견디며 몸과 마음을 다하여 무척 애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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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권등암장을 1983년 5월에 개척을 시작으로 정확히 30년만인 2013년 11월 14일(목)이 되서야 나의 모든 플랜의
목표가 실현되는 뜻깊은 날이다.
단순히 벽에다 39개의 루트를 개척하고마는 것이 아닌 높이 100여M, 폭 200여M에 달하는 바위면적의 주변환경의 부실한
보존살리기 작업까지... 그리고 행정기관과의 협력과 교류에 관한 플랜까지... 모두 완성되는 날이되었다.
[몇 번 열거했던 본문을 수정하여 발췌해 본다.]
권등암장을 1983년 5월부터 개척하기 시작한 후, 단독으로 개척한 세월이 오늘로서 30년이 걸렸다.
개척할 당시 이곳을 암벽등반의 레저타운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신념하에, 3년이면 욕심 이상의 결과가 이루어지겠다는
희망으로 개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30년이란 세월이 걸리고야 말았다.
시작할 당시 30년이 걸리는 개척이었다면 절대 손도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지면에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으나...
(본 등산학교 홈피의 "권등암장 개척기"를 읽어 보면 30년간 필자의 땀 흘린 기록이 약 50% 정도는 기록되어 있다.)
[권등암장 개척기 중...]
세월은 흘러 “권등암장”은 등반가들의 증가와 더불어 산의 대상이 일반적인 사람에게도 건강증진은 물론 일상적인 생활 속의
공간으로 다가오는 시기가 시작되었고 이들의 발걸음은 “권등암장”의 바윗길 주변까지 이르게 된다.
그로인한 크고 작은 사고와 비등산로의 길들이 생겨나는 것을 감지한 필자는 그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바위 길을 안전하게
정돈함은 물론 토사가 무너지는 곳마다 30년 동안 200여 차례가 넘는 주변공사를 착수하게 된다.
수천 개의 돌을 주워 모으고 그것도 모자라 300만원(돌 값)이 넘는 자연석을 채석장에서 사옴에 있어 또 다른 험난한 등반이
시작되었다.
구입한 돌들은(2개 이상은 못 들음) 물론 40㎏의 시멘트를 포함(약 200포대 이상) 모래, 왕사 등을 산 밑에서 지고 올라오는
“권등 동문”들의 노고와 이것들을 배합하기 위한 엄청난 분량의 물의 공급 등은 주변공사의 작업과정은 거두절미하더라도
이러한 준비과정은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만큼 끝없는 수행의 길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권등인의 자발적 참여로 지금의 “권등암장”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사막의 모래를 퍼내 바다로
만들었다 표현해도 필자에게만은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재미난 예를 정리해 봤다.)
1. 30년간 “권등암장”을 개척한 총 경비는 필자의 사비만 오천만원 이상 들었음.
2. 개척 및 보수에 의한 권등암장을 오른 횟수는(30년간) 9천회 이상 오름.
3. 일당 : 하루 노동 10시간 이상, 인건비 10만원 X 9천회 이상 = 9억 이상 무상으로 벌었음.^^
끝으로 30년간 최선을 다해 일구어 냈지만 최선에 의한 부족함과 모자람도 있을 것이라 자처해 보며 오늘에 "권등암장"이
있기까지 참여해 주신 권기열등산학교 동문 여러분과 그간 수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말씀에 감사의 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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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3 : 그리고 찾아 온 친구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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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를 한 달 앞두고는 날짜가 가질 않는다.
달력에 전역에 날을 표시한 부터는...
한 번쯤 누구나 경험해 봤을쯤일께다.
그럿듯 이번주 월요일에는 권등암장에 모든 플랜이 잡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화요일에도...
수요일에도...
잡히지를 않는다.
저녁 10시까지 해도...
항시 오늘은 끝날줄 알았는데...
정말 미치겠다.^^
오늘(목요일) 드디어 잡았다. 딱 30년 6개월만에...
그것도 30년 전 권등암장의 첫 개척루트인 "어린아이길"의 첫 볼트(위로 더 올림) 보수작업 즉, 권등암장의 마지막 플랜을
마치는 곳이 우연인지 첫 개척루트인 "어린아이길"에서 대미를 장식할줄이야...^^
어제(수요일)까지만해도, 이~ 30년 세월의 대미의 순간을 혼자 맞이하는 것에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기는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20년만에 잊쳐졌던 친구가 찾아왔고, 그를 만났다. 그 이상의 친구를 말이다.
이보다 더한 선물과 그간에 보상이 어디있겠는가 말이다.
아직은 회복 중인 상태이나 다음주 부터 나와 등반을 서서히 끌어 올리기로 했다.
(5월 8일 수술했다 함. 연대 세브란스에서, 나도 6월 15일 그 곳에서 수술했는뎅/자전거 사고로...)
이것은 이 친구가 나에게 찾아 온 선물을 넘어 보너스까지 더 받은 선물이며 나의 축복이 아니겠는가 싶다.!
- [내 친구 혁남이와 30년의 격동과 각고의 시간을 모두 마치고] -
[사연 4 : & 보람]
서대문 구청과 3년에 걸쳐 등산학교와 권등암장에 관한 건의와 협력 그리고 교류 끝에 권등암장 밑에 최신형 장비가
탄생되었다.^^
그 최신형 장비는 바로 해우소이다.^^
정말 멋진 장비를 권등암장에서 구입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위치 선정에 있어 견해들이 각각 있었으나 자연적 요소와 자락길에 관한 여러가지 면에서 적절한 장소에 선택되었다.
대한민국 암장 근처에 이렇게 아름답고 시설 좋은 해우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남...
여...
문을 열고 들어 가면...
난방 스팀과 손 건조기(실내가 무척 따스하다.)
깨끗한 객실^^
뜨거운 물까지 꽐~ 괄~
앞으로 권등인 모임장소는...
이 곳에서...^^
오늘 나보다 행복한 이... 있을까
앞으로도 말이다.^^
p.s :
1. 서대문 구민을 위한 안전등산교실 교육
2. 해우소 탄생
3. 3가지 중, 내년에 마지막 한 가지가 실현될 날을 기다리며...
<3번은 실현되면 발표할께요.^^>
구청장님과 행정기관 담당자 여러분 그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댓글목록
윤무진님의 댓글
윤무진
20년 만에 못 본 친구도 만나고, 30년 만에 권등암장 숙원도 이루고, 최신형 화장실도 설치한
권교장님의 뚝심 정말 대단하십니다.
권등 화이팅!
윤동주님의 댓글
윤동주감개무량합니다~~ 항상 좋은 일만 있길 기원합니다^^
임종여(40기)님의 댓글
임종여(40기)
교장샘 축하드립니다.
해우소 이용을 위해 함 들려야겠습니다
권기열님의 댓글
권기열
와~
종여씨 반가워요.
어서 얼굴 좀 뵈요.^^
123님의 댓글
123
중략은 생략하고가 압권임.
작가로 데뷔하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