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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등암장 개척기(본 등산학교의 전용암장) & 최초의 토벽등반 창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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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산학교 작성일14-05-21 13:17 조회5,0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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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열등산학교의 [권등암장 개척기] ◆ 1~2편 연재 후 [완결 편]

권등암장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과 무악동, 냉천동, 봉원동, 연희동을 품안에 두고 있으며 무악재 고개를 경계로 인왕산과 서로 마주보고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산 이름은 안산이라 한다. 이곳의 암장은 높이 100m, 폭 200m 정도에 달하는 독립된 바위로서 바위 전체가 설악산에 위치한 울산바위와 흡사한 하나의 큰 바위덩어리로 형성되어 있다.
이곳의 암장을 필자가 개척한 후(대다수) 암장의 이름을 권등암장으로(2000년) 명하여 부르고 있으며 본 등산학교의 전용암장(교육장)으로도 사용하고 있다.(총 40개의 등반루트/2015년 기준)
처음에는 필자의 능력에 맞는 높은 난이도만을 개척해 놓았으나 등산학교를 개교한 후부터 교육생의 수준과 교육진도에 맞는 루트들로 재정립(개척)해 놓았다. 이는 본 등산학교 교육생이 교육기간 중 체계적으로 등반교육(등반시스템과 실전등반)을 최대치로 향상시킬 수 있는 최적의 암장(교육장소/교육환경)으로 탄생되게 되었으며 아울러 국내 교육기관 중 본 등산학교만이 유일무이한 전용암장을 보유하고 있게 된 동기 또한 됐다.


이는 설령 학교에서 잘 가르쳐 준다 해도 교육적 환경이 완비되어 있지 않으면 교육생에게 살아 전달되는 교육 또한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또한 권등암장은 교육생이든 동문(졸업)이든 약속 없이(평일은 물론) 찾아와도 권등인들을 볼 수 있으며 설령 처음 보는 관계라도 자신의 암벽반 기수를 전달함으로 자일을 엮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보통의 행복이라 할 수 없는 본 등산학교만의 혜택 중, 하나인 것이다.


또한 교통 및 접근, 주차, 식사, 식수, 야영, 암장의 난이도 등, 모든 교육적 환경이 등산학교 교육장으로서 완벽한 7박자의 화음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이는 전국은 물론 세계 어느 곳의 암장과 비교해 봐도 가장 으뜸이라 할 수 있는 곳이 본 등산학교의 전용암장인 권등암장이라 말할 수 있다. 권등암장의 루트별 등급을 보면 5.7급부터 5.13a까지 다양한 등급의 루트가 분포(개척)되어 있으며 건강한 화강암으로 되어있는 반면 일부는 퇴색된 푸석 바위로도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루트는 한 급수 또는 한 등급 올려 쳐주어도 과언이 아닐 듯싶은 루트이다.

권등암장을 개척한 동기는(2015년 기준) 33년 전(1982년) 인수봉 등반 중, 필자가 사고를 당하게 되었고 그 결과 오른쪽 발목을 자유롭게 못 쓰는 장애에 이르게 된다. 1년여 동안의 투병생활은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게 되었고 25세의 젊은 나이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어찌 그때의 시간들을 글로 표현할 수 있으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오름 짓에 익숙한 필자가 아니었던가! 퇴원 후 통원치료를 받던 어느 날 집안 툇마루에 앉아 먼 곳에 시선을 둔다. 어~! 저기에 절벽(바위)이 있네! 그 곳이 안산이었던 것이다.(필자 집은 서울 종로구/안산은 큰길 건너 서대문구) 즉 사고 전에는 안산에 있는 암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그때 당시 25년 동안 살았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등반을 했음에도...)
그것은 그 당시 도봉산의 선인봉, 북한산의 인수봉으로 등반을 가는 것이 그 시대의 흐름이었기 때문이다.(지금처럼 자연암장이 전국 각처에 개척되어 있지 못한 시절) 즉, 사람이 큰일을 겪고 나면 성숙해진다고 할까! 등반사고를 계기로 시야가 트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목발을 짚고 안산(봉수대 바위)에 올라가 보니 이곳에 자주 온다는 분이(봉원동 거주) 혼자서 등반을 하고 있었다. 등반루트를 살펴보니 3개의 루트가 개척되어 있었으며 실 크랙에는 철근으로 만든 확보지점이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루트마다 닥트링이(인위적으로 바위를 까냄) 수없이 파여 있는 것을 보고 내심 충격이었으며 그 크기는 운동화 신고 자일 없이도(솔로) 오를 수 있는 사장된(죽은) 루트라 할 수 있었다.

시간은 흘러 친구와 목발을 짚으며 설악산과 지리산 정상까지도 올라보고 직장도 목발 짚고 다녀보았으나 산은 필자의 노력만큼 받아주는데 반해 세상의 일은 그러하지 못했다.(목발을 짚는다는 이유) 그러나 무엇에 미치면 세상의 시련도 견딜 수 있듯 그 와중에 누워서 할 수 있는 운동과 그 상황에 할 수 있는 모든 근력운동을 거듭한 결과 의지로 똘똘 뭉친 필자의 다리는 회복되어 갔고 어느덧 두 가지의 목표가 나의 가슴을 요동쳐오는 것을 느꼈다.
하나는 나의 다리를 찾아 그 곳으로 간다는 것과(사고 난 루트) 또 하나는 안산의 암벽을 암장으로 개척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발목이 구부러지지 않는 장애의 고통은 지금까지 떼어낼 수 없는 필자의 삶에 영원한 현실이 되었다. 슬프다! 그러나 필자는 그 현실을 직시했다. 그래! 죽을 자신이 없다면 나의 현실을 인정하자!. 그렇다면 이 고통을 즐기자! 그리고 나의 다리를 찾자! 그렇다면 나의 다리는 과연 어디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나의 다리는 산에 있었던 것이다.

병상에 누워있을 때는 나의 다리 나의 삶을 산이 빼앗아 갔다고 좌절하곤 했다. 그러나 산은 나의 다리를 빼앗아 간 것이 아닌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다리 나의 삶을 찾아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산이요! 등반이 아니겠는가! 어느덧 목발을 놓았다. 그리고 3주 후 나의 삶을 바꿔 놓은 그 곳 그 루트에 도착하게 된다. 내가 이곳에 다시 온 이유는 나의 다리를 찾으러 왔던 것이며 이곳을 넘지 못하고는 어느 것 하나 할 수 없는 나의 고집 나의 운명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이곳을 향해 집을 나설 때는 긴장했을 터인데 막상 그곳에 도착하니 '이 정도쯤이야' 라는 오만함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함이 아닌 1년 동안의 시련이 나에게 10년 이상의 경륜(발전)과 시야를 가져다준 자신감이었다. 결국 필자는 두 번째 목표를 향해 안산의 암벽으로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선 개척에 필요한 장비를 구입한 후, 최대한 자연적 바위흐름을 가지고 정상까지 이어지는 루트를 살펴보니 아주 좋은 그림이 나온다.
결국 안산 암벽에 필자의 첫 루트가 탄생되었고 지금까지 수많은 루트를 이곳에 개척해 놓았지만 이 루트는 지금도 권등암장의 대표적인 루트가 되었음은 물론 봉수대의 정상을 잇는 유일한 루트 또한 되었다. 최고 난이도 5.12b를 자랑하고 있으며 루트명은 “어린아이길”로 명하였다.(5월 5일 어린이날 개척)


권등암장에서 대다수의 길을 개척할 때 의미 있던 과정은 필자 혼자, 모든 것을 개척했다는 것과 손 해머(망치)로 모든 볼트작업을 일구어 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무엇으로 표현해볼까! 예를 들어보자! 집에서 시멘트 못 1개를 벽에다 끝까지 박아보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12㎜ 앵커볼트의 굵기(길이 3.5㎝)를 화강암 바위 속에 뚫는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 당시는 요즘과 달리 전동드릴은 상상도 못할 시절이었다. 또한 개척할 때마다 최대한 바위의 흐름을 살려 개척하려는 루트파인딩은 실로 프로기사들이 기반(바둑판) 위(반상)에 한 점을 놓기 위해 혼과 넋을 불어넣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음은 물론 그에 수반된 준비과정 등은 수많은 확보물을 설치하는 것보다 더욱 힘든 일이었으며 아울러 필자의 가슴속에 밀려드는 그 무언가의 외로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추락에 의한 공포심, 개척비용을 감내하는 부분들은 필자를 더욱 힘들게 한 과정들이었다.

시간은 흘러 등반세계에서 들어보지도 못한 사상 초유의 사건이 이곳에서 발생하고 만다. 권등암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은 1983년 5월이었다. 첫 루트인 어린아이 길을 시작으로 연이어 5개의 루트를 개척했다. 그러나 1년 후쯤 5개의 모든 루트의 볼트가 뽑혀있는 것이 아닌가!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러나 앞으로 전개될 실화에 비하면 이것은 서곡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때 필자의 심정 또한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한동안 실의의 나날을 보내다 그해 가을 기존루트를 다시 보수한 후 몇 개의 루트를 더 개척해 놓았다. 세월은 다시 흘러 1년 정도 되었을까! 또다시 모든 루트가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되고 만다.
어찌! 이런 일이 반복되어 일어난단 말인가! 필자는 두 번째 볼트도난 사건 후 산에 대한 깊은 실의를 느껴 그해 등반시즌을 마감하고 만다. 그 후 이곳에서의 개척등반은 포기하자 했지만 나의 시선은 언제나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필자의 의지와 달리 말이다! 그럴수록 괴로움은 더해만 간다. 그 범인이 밉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운명은 피해갈 수 없는 법, 미워지는 만큼 나의 의지 또한 활활 타오르고 있음을 피해갈 수 있으랴! 필자는 어느덧 이곳에서 3번째 보수작업을 시작하였고 그 후, 또다시 6차례의 볼트도난 사건이(총 8차례) 연이어 벌어지는 사태를 필자는 겪게된다. 여러분! 믿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필자가 개척한 루트들만 도난을 당한단 말인가! 실로 통탄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때부터 필자는 마음을 비웠다. 그래! 너는 빼라~ 나는 박으련다! 필자는 완전 우직한 돌쇠작전으로 다섯 번째 도난사건의 모든 루트를 복구한다. 그런 후 이곳 암장을 보호하기 위해 1998년 산 관련 월간지에 권등암장을 기고하게 된다.

솔직히 이곳 암장은 필자의 주위 사람들과 조용히 등반하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범인찾기가 힘든 상황이라면 필자의 욕심을 버리고 암장의 루트를 사수하는 쪽이 올바른 선택이란 결론에 월간지에 발표하게 된다. 그 후, 많은 등반자들이 찾아 왔고, 그로인해
권등암장은 볼트도난 사건이 한동안 잠복기에 들어선다. 그러나 필자는 암장개척 발표에 의한 생각치도 못한 후유증에 또다시 시달리게 된다. 등반자들의 인산인해로 인한 암장의 오물 및 쓰레기는 필자의 또 다른 업보로 받아들이게 됐고 일요일은 물론 주중에도 주변청소를 하는 것이 지금까지 일과가 되었다.(현 2015년 까지) 그로인한 지역구청에 화장실에 관한 지원을 수없이 제기하였으나 그의 관한 대답은 지원은 약속했으나 그 시기는 언제일지 모른다는 답변만 몇 년째... 결국 화장실은 그 당시 필자의 돈으로 구입하여 암장에 올려놓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돈으로 구입한 것보다 화장실을 들어 올리는 과정은 우리 네 식구(당시 아들: 초등학교 3학년, 딸: 초등학교 1학년, 아내)가 히말라야의 정수리를 오르는 것만큼 힘든 과정이었다. 오직했으면 화장실을 제자리에 올려놓고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눈물을 흘렸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껴볼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권등암장의 시련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잠잠했던 볼트도난 사건이 또다시 일어남은 물론 그 후, 화장실까지 잘려나가는 초유의 사건이 또다시 벌어지고 만다. 이것은 영화에서나 꾸며지는 시나리오가 된 것이다. 이때가 대략 2001년도쯤인가 싶다. 시간은 다시 흘러 여덟 번째 도난당한 루트를 보수한 필자는 범인 잡기에 직접 나서게 된다. 이때는 필자가 1986년경부터 충무로에서 인쇄업을 운영하고 있었고 생활 또한 여유가 있었던 시기였다. 망원경을 구입한 후(사진기 준비) 5일간 이곳에 잠복하며 범인 찾기에 나선다. 결과는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원인을 분석해 보니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판단에 필자의 동선을 알고 있는 주위 사람 중 한명일 것 같았다. 가장 먼저 의심 가는 사람을 지목하게 된다. 어느 날 그에게서 전화가 온다. 기열아! 내일 바쁘니 또는 필자의 사무실에 자주 찾아와 '이번 주는' 뭐해?' 라며 필자의 동향을 오래 전부터 묻던 그였다. 또한 그를 처음 만난 곳도 이곳 암장에서 만나게(등반) 된 필자와 친밀한 3년 연배로서 볼트도난 사건이 일어나면 그에게 먼저 알렸고 그 또한 위안과 격려를 따뜻하게 전해주는 둘도 없는 형제와 같았다. 그런 그를 의심하는 필자의 마음은 매우 힘들었으나 인간의 본능은 필자 또한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필자는 그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2박 3일간 설악산 등반이 있다고 말이다.(거짓) 다음 날 필자는 심장이 떨리듯 이곳에 잠복해 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 잠복하고 있던 날 사무실에 업무관계로 통화하는 중 그의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왠지 불안하다. 설악산에 갔다는 걸 알면서 필자의 출근확인을 직원에게 묻다니! 그 순간 불안감이 무섭게 밀려온다. 만약 그가 범인이라면 어찌 대면한단 말인가! 그를 믿어온 필자의 마음이 산산조각 난다는 것이 더욱 무서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누군가 루트 위에서 자일을 내린다. 망원경을 보니 그였고, 범인은 바로 그였던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곳으로 달려가지 못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 솔직한 표현은 그를 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며칠 후 그가 사무실로 찾아온다. 잘 다녀왔냐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난 그에게 침착하게 전한다. 왜!그랬냐고... 그는 완강히 부인한다. 결국 증거사진을 보여 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이곳에서 네가 나보다 더 유명해지는 것이 싫었다' 라고 하며 무릎을 꿇는다. 나는 대답했다. 앞으로 이곳(사무실)과 그곳(암장)에는 나타나지도 말라고 대신 나 또한 당신이 한 짓을 세상에 알리지 않겠노라고... 이 영화와 같은 스토리는 권등암장 개척기로 인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나 그 범인의 이름은 필자의 마음속에 묻혀 진채, 사상 초유의 볼트도난 사건은 영원한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세월은 흘러 권등암장은 또 다른 역동의 시기를 맞이한다. 등반가들의 증가와 더불어 일반적인 사람에게도 산의 대상이 건강증진을 위한 일상적인 생활 속의 공간으로 찾아오는 변화가 시작되었고, 이들의 발걸음은 권등암장의 바윗길 주변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로인한 크고 작은 사고와 무분별한 등산로의 길들이 생겨나는 것을 감지한 필자는 그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바윗길을 안전하게 정돈함은 물론 토사가 무너지는 곳마다 32년간(1983년~2015년) 200여 차례가 넘는 주변공사를 착수하게 된다. 수백 개의 돌을 주워 모으고 그것도 모자라 400만원(돌 값)이 넘는 자연석을 채석장에서 구입함에 있어 또 다른 험난한 등반이 시작되었다. 구입한 돌들은 물론 40㎏의 시멘트와(200포대 이상) 모래, 왕사 등을 세상 밑에서 지고 올라오는 본 등산학교 동문들의 노고와 이것들을 배합하기 위한, 엄청난 분량의 물의 공급 등은 주변의 공사과정은 거두절미하더라도 너무나 힘든 끝없는 수행의 길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권등인의 자발적 참여로 지금의 권등암장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사막의 모래를 퍼내 바다로 만들었다 표현해도 필자에게만은 과언이 아닐 듯싶다.
1. 30년간 “권등암장”을 개척한 총 경비는 필자의 사비만 구천만원 이상 들었음.
2. 개척 및 보수에 의한 권등암장을 오른 횟수는(32년간/2015년 기준) 9천회 이상 오름.
3. 일당 : 하루노동 10시간 이상, 인건비 10만원 X 9천회 이상 = 9억 이상 무상으로 벌었음.^^

아울러 권등암장을 필두로 권기열등산학교가 이곳에서 태동되는 계기가 되었고 등산학교를 나오면 행동(실전)이 아닌 말(이론)로만 할 줄 아는 소수의 등산학교 출신의 현실을 뒤집고자 '이론 없는 실전 없고, 실전 없는 이론 없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등반의 행위(실전)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행위로서 표현, 표출하는 것이다.]란 권기열등산학교의 교육이념 하에 권등암장에서 2000년 7월16일 권기열등산학교 암벽반 1기 교육을 시작으로 개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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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등암장을 방문하는 등반자 여러분께!


권등암장 개척을 시작으로(1983년) 어언 권등암장의 탄생도 32년이(2015년 기준) 되었다. 그간 필자는 개척자로서 관리자로서 최선을 다함에 있어 부족한 면도 있었을 것이며 또한 많은 분들이 필자에게 늘 격려해주심에 감사드린다.


아울러 권등암장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권등암장 뿐이 아닌 국내 모든 등반대상지는 이들로 인해 황폐해지고 있다. 물론 그들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필자는 이들의 전반적인 활동을 관찰해본 결과 2006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리지와 암벽등반을 하는 대다수의 무질서한 인터넷 카페 산악회가 우후죽순 생겨남에 있어 산과 등반에 관한 철학과 윤리, 규칙과 규율, 등반과정에 의한 총괄적 등반시스템 부재 등이 큰 문제로 나타남은 물론, 더욱 황당한 일은 등반에 관한 전반적인 경험이 일천한 카페 산악회가 OO카페 등산학교라는 명칭 하에 등산학교 교육을 주관하는 작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로인한 국내의 등반사고의 대다수는 이곳에서(카페 산악회 회원) 발생진행되어 고귀한 생명과 소중한 건강을 잃어버리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들은 개척자가 수많은 시간과 피땀 흘린 노력으로 일구어낸 암장에서 대가없이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노고의 말 한 마디는커녕 이랬느니, 저랬느니, 불평과 불만은 물론 자신의 등반능력 부족으로 못 올라가는 특정루트를 닥트링(바위를 파냄) 한다든가 볼트거리가 멀다고 구간사이에 개척자 몰래 볼트를 설치함은 등반세계의 범법행위인 것이다.아울러 주위 시설물 등을 훼손하는 것도 모자라 고기구운 기름과 과일 껍데기 그리고 수많은 쓰레기 등과 담배꽁초를 암장주위에 버리고 가는 일은 자연보호법에 위반되는 점을 떠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도 망각해버리는 독버섯 같은 일들이 이들에 의해 나날이 더해지고 있으며, 더 많은 그들이 이러한 집단에서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집 안팎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집 앞마당을 밟으면 더욱 난리칠 인간들이라는 것이다.그것도 모자라 비등산로를 등산로로 만들 양, 풀과 잡목을 마구 밟음과 동시에 토사를 무너트리는 일탈을 일삼기까지 하고 있다. 토사가 짓밟히면 나무와 풀이 살아남기 힘들고, 나무와 풀이 없으면 풀벌레가 없게 되고, 풀벌레가 없으면 새가 날아들지 않으며, 새가 날아들지 않으면 우리 인간의 마음은 더욱 피폐해져 간다는 것이다.한마디로 자연환경에 관한 개념은 개판에 이르렀음은 물론 남 욕, 남 흉, 참견, 고성, 무질서, 가는 자리, 머물렀던 자리에 오물투척과 지정된 장소가 아닌 곳에서 버너사용과 음식물찌꺼기, 생리적인 대/소변 처리방식은 물론 산불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모닥불 등 이 모든 흔적의 뒤처리는 뭐라 표현할 단어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지켜보고 있던 국립공원관리공단 및 지역 지자체에서는 그들의 만행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급기야 암장폐쇄 조치와 같은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다. 이러한 특단의 조치에 이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하기는커녕 어리석은 이들의 공범들은 국립공원관리공단 및 공공기관에 불평과 불만 등으로 볼멘소리를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대목에 관해 심층 거슬러 올라가보면 10여 년 전부터(2015년 기준) 국립공원관리법에 의해 설악산의 등반대상지인 많은 루트와 암장이 폐쇄되어가고 있고, 북한산 야영장 축소 및 폐쇄 논란에 휩싸이는 가운데 2014년에는 북한산 일원의 몇몇 지역암장의 경우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의해 암장이 폐쇄되는(모든 확보물 제거) 특단의 조치가 취해졌다.우리는 이러한 공공기관의 일방적인 조치에 강렬한 불만의 목소리를 표시하고 있지만 실은 이 모든 결과는 우리들로 인해 자행된 결과이기도 하며 특히 등반교육기관이나 정통 산악회의 행위라기보다는 대다수 우후죽순으로 생성되고 있는 무분별한 인터넷 카페 산악회에서 자행한 행위로 벌어진 결과라 해도 극히 틀린 결론은 아닐 것이다.


한번은 등반대상지에서 이들에게 계도를 하니 어느 곳이든 내발로 와서 행함이 자신의 자유이며, 권리라며 왜! 자신이 제재를 받아야 하냐고 따진다. 그렇다면 앞서 이야기했듯 자신의 집 안팎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집 앞마당을 허락 없이 밟아도 그의 자유이며 권리라는 말인가! 즉, 자유와 권리는 자신의 행함에 앞서, 상대 & 대상지에게 우선적으로 지켜줄 의무가 이행될 때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을 우리 모두는 모르고 있으며, 정녕 모른단 말인가! 앞으로 독버섯 같은 공범들의 작태가 자행되는 한 우리의 터전(대상지)과 입지(자유)는 점점 좁아질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각인되어야할 것이다.
[안산(도시자연공원/서울 서대문구 소재) & 권등암장은 2014년부터 서대문구청(구청장 문석진)에서 본 등산학교장을 보안관으로 위촉한 후, 산림보호법에 관한 지킴이로 이곳 권등암장에 상근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계도/계몽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2014년 5월부터(시행) 이곳 안산(도시자연공원) 및 권등암장에서 화기사용 및 인화물질, 쓰레기 무단투기, 수목훼손과 시설물 훼손 등의 적발 시,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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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등암장"의 40개 루트를 간략하게 설명해보자.] :
[1번째 루트]
"동지길"은 25년 전에 개척한 곳으로 90도의 수직으로 형성된 6m 높이의 독립된 바위다. 이곳은 상당한 완력과 밸런스가 요구되는 루트이다.
[2번째 루트]
"좌측길"은 2015년 4월 초에 권등암장에 40번째 루트로 개척된 루트이다. 3번째 루트인 재탄생 길에서 출발하여 배바위를 넘어 직상크랙을 잠시 오르다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형성된 언더크랙으로 향하면 11시 방향으로 강력한 페이스를 맞이하게 되며 이곳을 무사히 오르면 포근함을 느끼는 1피치를 맞이하게 된다. 2피치는 1시 방향으로 오르면서 재탄생길을 오른쪽으로 두고 좌측 직상크랙을 오르면 재탄생길 2피치에서 종료된다.
[3번째 루트]
"재탄생"은 등반루트로는 완전 사장된 기존의 루트를 완전히 재정비하여 새롭게 살려서 탄생된 루트로서 중급자로 발전하기 위한 최적의 재미난 루트이다.
[4번째 루트]
“처음처럼”은 2008년 7월에 개척된 인공등반 루트로서 첫 행위는 자유등반으로 오른 후 1피치와 더불어 2피치 종료지점까지 85도의 페이스 모두를 스카이훅을 설치해가며 올라야하는 루트이다.
[5번째 루트]
“2540”은 본 등산학교의 2005년 암벽반 첫 기수인 40기를 기념하는 루트로서 1피치 첫 볼트는 강력한 볼트 따기로 처음부터 힘을 쏟는 곳이다. 첫 볼트와 두 번째 볼트를 인공등반으로 오르면 사선크랙에 좁은 테라스가 나온다. 이곳부터 1피치가 종료되는 곳까지 상당한 페이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점은 5.11c급의 구간이다. 2피치는 완만한 크랙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곳의 난이도는 5.7급에 달하는 기분 좋은 2피치라 할 수 있다.
[6번째 루트]
"불후의 명작"은 2012년 7월 2일 개척되었다. 이곳 권등암장에서 필자는 30년 넘게 대다수의 모든 루트를 개척, 보수 및 관리를 하고 있으나, 정면바위(봉수대)를 보고 있으면 무언가 보이지 않는 허전한 공간(개척라인)이 내 마음속에 늘 공전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미칠 정도로 보이질 않았다. 무언가 늘 허전한 마음이 나를 감싸기를 몇 년... 약 두 달 전, 그래! 저 곳이면 괜찮은 등반라인이 나올 것 같은데... 어느 날 라인이 보였다. 그래! 저 곳이다! 저 곳... 그것도 30년 전 권등암장에서 첫 번째 루트를 개척한 어린아이 길 바로 좌측이다 보니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마지막으로 개척하자는 곳이 첫 번째로 낸 루트의 바로 옆이라는 것에 무언가 우연의 일치 보다 더욱 의미 있는 만남의 이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012년 7월 9일 시등을 한 결과 1피치는 페이스로서 5.11b급, 2피치는 적절한 곳마다 포켓홀드가 있는 5.10c급의 난이도가 나오는 상급자 루트이다.
[7번째 루트]
"어린아이길"은 1983년 5월 5일(어린이날) 이곳 권등암장에 현 40개 루트 중(2015년 기준) 최초로 개척한 필자의 첫 번째 작품이다. 등반길이가 80m에 이르며 이 루트는 시작부터 끝까지 엄청난 페이스로서 상단의 면상바위는 5.12c급을 자랑한다. 또한 이 루트의 특징은 요즘 클라이머는 대부분 오름 짓만 할 줄 알지 펜드럼 트래버스(횡)와 같은 등반시스템은 전무후무할 정도로 인지하지 못함을 상기시켜 주기 위한 루트로서 1피치 막바지에 있다. 이 루트는 권등암장에 대표적인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30년이 지난 지금도 권등암장에 독보적인 대표루트로 사랑받고 있으나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루트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8번째 루트]
"3학년 1반"은 높이가 60m로 미묘한 페이스와 쌍크랙을 올라서면 1피치가 종료된다. 2피치는 1피치보다 엄청 어려운 페이스 지점으로 등반의 극치를 느끼는 5.12급의 루트이다.
[9번째 루트]
"남녀길"은 넓은 벙어리 크랙과 반 침니로 형성되어 있으며(1피치 종료) 2피치는 그리 어렵지 않은 사선 크랙을 따라 오르면 좌측길, 재탄생길, 처음처럼, 불후의 명작의 종료지점인 확보지점이 나온다.
[10번째 루트]
"갈등"은 첫 번째 볼트까지 오버행을 레이백으로 오른 후 왼손으로 인공홀드를 잡는 것이 무척 멋있다. 그러나 다음 지점부터 더욱 어려운 난이도가 기다리고 있는 루트이다.
[11번째 루트]
“눈이 와서 좋은날"은 각고의 신념으로 권등암장을 개척한지 32년의 세월이 흐른다.(1983년~2015년 기준) 이것은 권등암장이 어느 지역암장보다 더욱 훌륭한 형태의 루트를 보유하게 된 최고의 암장이라 자부하는 세월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속 깊이 개인적인 욕심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겨울시즌에 행해지는 혼합(믹스) 등반루트이며 더욱이 피치(짧고)등반 루트가 아닌, 정상적인 바위의 흐름을 따라 정상까지 등반라인이 이어지는 멀티(긴)등반 루트를 개척하고픈 마음이 절실하게 숨겨져 있었던 중 등반라인을 찾아냈고 드디어 멀티등반인 믹스등반 루트가 탄생되게 된다. 이 루트가 개척되기까지 상황은 이렇다. 루트 개척일인 전 날(월) 일기예보에서 수요일에 많은 눈이 내린다는 예보에 예전부터 눈여겨보았던 이곳으로 달려간다.(화) 기온은 급강하하여 무척 추웠으나 눈이 쌓인 루트를 내일(수)등반할 생각을 하니 흥분된 마음이 내 몸을 뜨겁게 달군다. 홀로(단독) 개척을 시작으로(총 3피치) 봉수대 정상에 루트개척을 완료하니 오후 8시 30분(2013년 12월 10일/화요일) 드디어 그리도 갈망했던 루트가 탄생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그 추위와 고통은 기쁨만큼 수반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대가인가보다. 그러나 화요일에 개척 후 수요일과 목요일은 파트너가 없어 시등반이 연기되는 조급한 마음이 가득할 즈음 드디어 금요일 김효성 동문과(암벽반 105기/빙벽반 17기 졸업) 이곳을 올랐다.
[12번째 루트]
"너와 나의 길"은 상/하단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하단은 우향 크랙으로 본 등산학교 좌/우향 레이백 동작을 교육하는 멋진 크랙으로 형성되어 있는 루트이다. 2피치는 1피치를 오른 후 11시 방향으로 15m 정도 걸어가면 2피치 시작점이 나온다.
[13번째 루트]
"화요 스페셜"은 2014년 5월부터 화요일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이들과 등반을 이어나갔다.(암벽반 113기 김창연, 곽희연) 이들과 12월 마지막(화요일) 등반을 마치고 약속을 한다. 너희와 매주 함께한 시간들이 무척 행복했고 그 보답으로 너희들과의 특별한 의미를 영원히 남기겠노라고... 그 의미는 2015년 3월 17일(화요일) 개척한 루트로서 루트명을 "화요스페셜"로 명하였다. 이 루트의 시작은 어렵지 않은 10m 슬랩을 올라 9시 방향으로 상당히 불량한 바위의 슬랩을 트래버스(위험)한다. 포켓홀드의 크랙을 잠시 올라, 언더크랙에 진입하는 페이스가 첫 번째 크럭스며, 불량한 언더크랙을 언더클링으로 트래버스 하는 동작이 두 번째 크럭스다. 더욱이 이곳은 손가락 끝이 잘 걸리지도 않는 흐르는 언더홀드로 그나마 잡히는 부분도 부서지는 푸석 바위라 상당한 심적 부담을 느끼는 지점이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펌핑이 온몸을 휘감을 때 강력한 직상크랙의 흐르는 포켓홀드를 연이어 넘어서야하는 세 번째 크럭스를 맞이하게 된다. 세 곳의 연속적인 크럭스를 오르기 위해서는 테크닉, 완력, 밸런스 즉, 3박자 중 하나만 부족해도 오르기 힘든 연속구간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마지막 구간인 15m 직상크랙을 오를 때는 발재밍에 의한 상당한 통증을 감내하며 오르면 이 루트를 마치게 된다.
[14번째 루트]
"나 하나만의 길은 총 4피치로서 1피치는 18비(16번 루트) 하단을 오르면 18비 하단 1피치 지점 왼쪽으로 2피치 출발점이 있다. 2피치는 수직에 가까운 페이스로 손끝과 발끝으로만 오르는 토잉등반으로 이곳을 오르면 몇 일간은 손/발끝의 통증이 매우 심할 정도다. 이지점을 오르면 왼쪽으로 형성된 언더크랙을(13번 루트의 언더크랙 역순루트) 언더클링으로 트래버스 하는 과정은 13번 루트와 같은 불량한 지점으로 이곳을 통과하면 2피치가 완료된다. 3피치는 2시 방향으로 페이스를 오르면 넓은 테라스가 나오며(3피치 완료) 4피치는 10시 방향으로 12m 정도 걸어가면 칼날 칸테와 슬랩을 오르면 4피치 등반을 마감하게 된다.
[15번째 루트]
“나도 따라가고파”는 2009년 늦봄에 개척한 곳으로 20m 크랙(디에드르/책을 펴놓은 형상)루트이다. 이곳은 얼 뜻 볼 때 5.7급 정도의 그리 어렵지 않은 루트로 보이나 상단쯤에는 5.10급에 준하는 루트로서 매우 매력 있는 핑거크랙과 반침니로 형성된 루트이다.
[16번째 루트]
"18비(rain)길” 암벽반 18기를 기념하는 루트로서 이 기수는 멀쩡했던 날도 교육 일만 되면 비가 내렸다.(5번 연속) 그래서 이름 지어진 루트명이다. 5.10d급의 20m 슬랩을 오르면 1피치가 종료된다. 2피치는 독립된 송곳바위로서 우향 크랙을 따라 오르다. 바위 전체를 껴안고, 항아리 껴안는 오묘한 동작이 연속으로 요구되는 상급자 루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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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있는(점선 안에 있는 17∼26번 루트까지) 루트부터는 본 등산학교의 “교육암장”으로 사용되는 교육장으로 이곳을 “교육암장”이라 한다. 본 등산학교 교육 중 4차 인수봉 등반일을 제외한 모든 교육 일정이 1년 내내(일요/암벽반) 이곳에서 진행됨으로(빙벽시즌 12월 3째 주부터 1월, 2월 까지 제외한 3월 1째 주 부터 12월 2째 주까지 등반교육 진행) 일요일에 이곳 “교육암장”을 찾아오는 등반자는 “교육암장”에 관한 이곳의 장소는 본 등산학교에 양보(협조)해 주기를 당부 드린다.
또한 평일/암벽반 교육 일에는 본 등산학교 홈페이지에 공지를 하고 있으니 이 날짜를 피해 주면 서로 좋은 등반교육(권등)과 여러분 또한 좋은 등반환경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곳을 제외한 모든 권등암장의 루트는 일요일이든 평일이든 1년, 12달 언제든 등반(개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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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번째 루트]
“나는 너를”은 권등암장의 B.C.이며(교육암장) 본 등산학교의 사무소가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교육암장의 맨 왼쪽에 있으며, 20m 슬랩을 오르면 오버행의 페이스를 만나게 되며 이곳이 크럭스(5.10b) 지점이기도 하다.
[18번째 루트]
"대슬랩"은 나는 너를 루트의 오른쪽에 있으며 이곳은 인수봉의 대슬랩 보다 등급이 높고, 넓은 루트이다.
[19번째 루트]
“너는 나를”은 대슬랩 루트의 오른쪽에 있는 루트로서 대슬랩 루트와 유사한 루트이다.
[20번째 루트]
"사랑해요"는 2010년 12월 1일에 개척한 루트로서 루트명은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루트의 이름을 결집하는 의미로 사랑해요라는 루트로 명하였다.
[21번째 루트]
“버티고”는 슬랩 구간에서 약간의 오버행 턱을 넘어서야 하며 1피치 종료 후 2피치부터는 왼쪽의 모든 루트와 흡사하다.
[22번째 루트]
"2학년 1반"은 초입부터 2번째 볼트까지는 인수봉의 참기름 바위보다 미끄러운 바위 면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언더크랙을 넘어서는 것이 관건으로 이곳을 선등으로 오를 수 있다면 중급자의 첫걸음을 내딛는 루트이기도 하다.
[23번째 루트]
"우대길"은 크랙과 슬랩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난이도는 5.7급의 루트이다.
[24번째 루트]
"추석길"은 미묘한 페이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권등암장의 대표적인 루트 중에 하나로서 1991년 추석날 개척됐다. 성묘 후 오후부터 루트작업을 하던 중 점핑의 아답터가 부러지고 말았다. 추석연휴에 문을 연 장비점도 없고 해서 앵커볼트를 손으로 잡고 해머로 때려 넣어 볼트를 바위에 집어넣었다. 그러다보니 늦은 시간에 개척이 끝난 관계로 가을(秋)추, 저녁(夕)석에 한자의 의미로 명한 것이다. 공교롭게 추석(秋夕)날에 탄생된 루트로서 일맥상통한 루트명이라 할 수 있다.
[25번째 루트]
“옛 추억”은 필자가 암벽시즌에 가끔 빙벽등반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빙벽장비를 착용하고 믹스등반을 했던 루트이다. 암벽등반의 난이도는 5.7급에 불과한 루트이나 왼쪽에 있는 우대길과 함께 믹스(혼합)등반 대상지로는 재미난 루트이다.
[26번째 루트]
"포틴 ppak"은 암벽반 14기를 기념하는 루트로서 75도 경사에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 루트 같지만 막상 등반을 해보면 참기름에 바나나 껍질을 더한, 상상을 초월한 미끄러운 바위의 성질을 갖고 있는 루트이다. 암벽화 고무창이 한 발 딛을 때마다 스티로폼으로 유리를 닦을 때나는 삑삑∼ 소리는 등반자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국내 최강의 유리바위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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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번째 루트]
"초등학교"는 암벽등반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재미를 흠뻑 느끼게 해주는 슬랩등반 루트이다.
[28번째 루트]
"소극장"은 초등학교의 루트를 한 등급 발전시킨 크랙등반 루트이다.
[29번째 루트]
"야외 음악당"은 초등학교(27번 루트)와 소극장(28번 루트) 오른쪽에 있는 루트로서 오른쪽 밴드를 따라가는 페이스 등반이다. 손가락 끝마디와 토잉(발가락 끝부분)등반으로 오르는 까다로운 루트이다.
[30번째 루트]
“달빛 사냥”은 다단계 길(31번 루트), 상어 길(32번 루트) 루트와 더불어 있는 독립된 상어바위에 있으며 권등암장에 빅월(거벽)루트를 만들고자 처음처럼(3번 루트) 다음으로 개척한 루트로서(2009년 늦봄) 처음처럼 루트가 초급 난이도라면, 이곳의 루트는 중/상급자에 달하는 인공등반 루트이다.
[31번째 루트]
“다단계 길"은 90도 수직의 바위로서 인공등반에 관한 볼트 따기와 레더등반 방식으로 오르는 루트이다.
[32번째 루트]
"상어길"은 이곳 또한 90도 수직의 바위로서 초입에 인공홀드 2개를 넘어서면 20m에 달하는 멋진 좌향 크랙으로 손가락 한마디만 들어가는 핑거크랙으로 형성되어 있는 루트이다.
[33번째 루트]
"꿈속에서"는 상어바위 건너편에 있는 슬랩 루트이며 그늘지고, 아담한 공간이 형성되어 있어 휴식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34번째 루트]
"꿈을 따라"는 망설였는데 볼트를 보니 은하수가보이네(35번 루트) 위에 있는 루트로서 처음처럼(4번 루트), 달빛사냥(30번 루트), 다단계길(31번 루트)과 같은 거벽등반 방식의 루트로서 등반길이가 100m에 달하는 상급자 거벽등반 루트이다.
[35번째 루트]
"망설였는데 볼트를 보니 은하수가 보이네"는 권등암장에서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루트이다.(5.13a) 등반의 어려움은 물론 개척과정에 있어서도 제일 험난한 루트작업이었다. 개척 당시 등반라인이 사선으로 되어있는 관계로 확보물 작업을 할 때마다 몸의 중심이 왕복(진자)현상으로 50번 이상 진자경험(추락)을 해가며 개척을 일구어낸 곳이다. 정말 두 번 다시 이런 루트개척은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눈물겨웠다. 등반길이는 100m 정도가 되며 볼트 개수만 40개가 넘는다. 출발점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뻗은 사선크랙을 재밍으로 오른 후 슬랩을 트래버스 한 후 언더크랙을 이용해 또 다시 오른쪽으로 트래버스를 해나간다. 그러면 1피치 확보지점이 나온다. 2피치 등반은 경사 90도의 달하는 페이스로서 모든 홀드가 흐르는 포켓홀드 유형을 따라 오르는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구간이며 숨통이 터질 것 같은 황홀감으로 마운틴 오르가즘에 빠져드는 그 자체이다. 필자가 개척한 후 이곳을 자유등반으로 완등하는데 있어 1년이 걸린 곳이다. 루트명은 개척 후 선등을 하려하니 글자 그대로 망설였을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볼트방향을 보니 확보물 라인이 은하수처럼 생겨 '망설였는데 볼트를 보니 은하수가보이네' 라고 명하게 되었다.
[36번째 루트]
"선물"은 월간지에 권등암장을 소개한 후 많은 등반자들이 찾아와 필자에게 선물을 비롯하여 많은 노고를 격려해줌으로 그들에게 보답을 해주고자하는 마음으로 개척한 루트이다.
[37번째 루트]
"편안한 마음으로"는 거친 바위 결을 가지고 있으며 오버행으로 형성된 반침니 구간을 자유등반으로 오르는 것이 최대의 관건이다. 등반 후, 온몸에 상처를 안겨주는 루트라 말하고 싶다.
[38번째 루트]
"목표달성"은 초입에서 천장(루프)으로 형성된 루트로서 허공으로 온몸을 던져 후킹으로 오르는 포토존 루트이기도하다.
[39번째 루트]
“낮은 비행”은 국내 루프(천장)등반에 있어 가장 넓은 인수봉의 귀 바위보다 규모는 매우 작으나, 레더를 이용한 인공등반 방식이 유사함으로 귀 바위 등반을 위한 등반시스템을 교육생에게 습득시켜 줄 수 있는 최적의 루트라 할 수 있다.
[40번째 루트]
"티롤라인 브리지"는 상어 길(32번 루트)과 꿈속에서(33번 루트)를 잇는 루트로서 모든 사람이 자일 한 가닥에 의지해 하늘을 날고픈 경험을 갖게 하고자 만든 40m에 달하는 루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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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 :
권등암장을 필자 혼자서 대다수의 루트를 개척한 날들이 32년이란 세월이 지났다.(2015년 기준) 지금껏 투여된 자금과 필자의 노고 및 성취감은 물론, 지금 이 순간까지 권등암장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필자의 헌신은 둘째 치더라도 암장의 루트가 8번 이상, 도난을 당하는 과정에서 오는 정신적 아픔, 보수작업 시, 바위의 도난구멍(흔적)이 있는 옆에, 또 다른 볼트 흔적을 남겼다는 것에... 세월이 흐른 지금도 아픈 마음으로 기억된다. 아울러 지금의 권등암장이 있기까지 용기와 격려는 물론 수많은 보수작업과 주변공사에 참여해 주신 권기열등산학교 동문여러분께 이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15년 권등암장 개척 32주년을 맞이한 즈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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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등암장] 오는 길 :
지하철 3호선 무악재역 3번 출구로 나와, 곧바로 120m 정도 무악재고개 방향으로 향하면 첫 번째, 두 번째 골목길을 그냥 지나친 후, 세 번째 길모퉁이 좌측에 [행복한 집 찾기] 부동산과 [현대자동차 서비스] 정비소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선다. 이곳을 끼고 50m 정도 오르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왼쪽 길로 올라야한다.(올라온 길에서 직진) 거기서 약 5분 정도 언덕길을 오르면, 주차를 할 수 있는 자연적 조건의 공간이 나오며, 12시 방향에 자락길 다리를 지붕삼아 돌계단을 5분 정도 오르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되, 잠시 가다, 왼쪽 능선으로 오르지 말고, 자연스럽게 등산로를 오른쪽으로 끼고 오르면, 백암 약수터가 나오며, 눈앞에 정자가 나온다. 여기서 낮은 왼쪽능선으로 올라붙으면 “권등암장” 및 “교육암장”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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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열 [세계 최초의 토벽등반 창안기] ◆ 1999년 월간 산 12월호 기재발표

"어! 실폭이 이사 갔네. 야! 정찬아 빨리 와봐. 실폭이 이사갔나봐. " 멀리 뒤떨어져 오던 정찬이 왈! "형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정찬이가 투덜대며 내가 가리킨 방향을 본다. 토벽등반이란 글을 월간 山 독자들에게 글로써 표현하려고 하니 무척 힘들다는 생각에 우선 필자의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설레 이기도하다. 허긴 소설가가 등반하는 것과 등반가가 글을 쓰는 것과 매한가지겠지 생각하며 필자의 글을 또 다른 등반이라 생각하며 오름 짓을 해보자.

"어! 여기 정말 실폭 야영장이 맞아"하며 되레 나에게 반문한다. 필자가 실폭 빙장을 찾은 지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빙장의 얼음이 붕괴되고 난 후에는 전혀 실폭의 위치를 한눈에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거봐 형 3월 넷째 주에 얼음 하자고 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 형보다는 속은 내가 더 바보지..." 그렇다 작년(97년) 3월 셋째 주에도 실폭을 찾았었다. 필자가 알기로는 실폭 빙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까지 얼음이 형성되어 있고 또한 그렇게 믿고 있었기에 셋째 주에(98년) 등반하면서도 오늘이 마지막 종빙으로 생각해야지 결심했건만, 어디 필자만이 생각하는 욕심이겠는가. 모든 등반가들이 필자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혹시 다음 주에도(또 올까?) 하는 생각 말이다".

필자는 겨울시즌 한해에 최소 30번 이상의 빙벽등반을 한다. 그것은 필자가 암벽보다 빙벽등반을 더 좋아해서가 아니라 암벽등반은 사계절 어느 때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지만, 빙벽등반은 겨울 날씨 중에서도 얼음이 형성되는 기온에서만 등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왠지 곧 떠날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을 조금 더 바라보고 싶어서인 것이다. "그것 봐 형! 바위나 하러 가자니깐 지금이 어느 땐데 얼음을 해" 하며 정찬이는 투덜거린다. 허긴 필자도 서울에서 장수대로 가면서 지난주에 앙상했던 빙질을 생각하며, 혹시나 했지만... 어디 사나이가 사랑하는 여인네가 멀리 떠난다는데 끝까지 배웅을 못해주겠나... 정찬이에게 무척 미안했다. "야! 정찬아 여기까지 온 김에 경포대에 가서 회나 먹으며 바다 구경이나 하자" 하며 왠지 허전한 마음을 가지고 경포대로 갔다. 바다를 보면서도 허탈한 마음은 버릴 수가 없었다.

시간은 흘러 서울로 핸들을 향했다. 한계령 고개를 올라 갈 쯤 왼쪽으로 도로공사를 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 순간 내 자신도 잊고 있었던 토벽등반이 떠올랐다. 그래 맞다. 필자가 토벽등반이란 생소한 오름 짓을 세계 최초로 창안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정찬아! 나를 따르라...(마음속으로...) 도로 공사장에 다다랐다. "형! 여긴 왜? 필자 왈! 우리 빙벽장비로 여기 한 번 올라가 보자. 정찬이 왈! 뭐야! 형! 정신 나갔어! 여길 빙벽 장비가지고 어떻게 올라가" "지켜봐! 자식아! 너는 형 때문에 출세한 줄이나 알아! 임마!^^" 출~발 으흐흐... 이런 등반 못 봤지. 필자의 3지점이 빙벽등반과 같은 방식으로 오름 짓을 한다. "정찬아! 완료! 올라와~" 잠시 후 정찬이의 얼굴이 보통 흥분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형! 정말 대단하다. 아니, 이런 등반을 어떻게 할 생각을 했어. 야~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하며 투덜대며 버겁게 올라온다. "거봐! 임마! 위기 속에 기회가 오는 거야. 산 선배가 달래 산 선배인줄 아냐" 필자는 어깨를 으쓱해 본다.

토벽등반이 탄생하기까지를 정리 해보면 몇 해 전 늦은 봄에 일본의 북 알프스를 다녀왔다. 거기서 필자가 느낀 것은 만년설이 있다는 것과 사시사철 빙벽등반을 할 수 있는 알프스 및 여러 나라를 생각해보니 등반가인 필자로서는 그 나라들이 매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만년설을 보며 우리나라도 빙벽장비 가지고 한 여름에도 등반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생각하며 서울로 왔다. 그 어느 날 신장에서 남한산성 가는 길에 도로확장공사를 하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고 그 양쪽으로 형성된 도로사면을 보고 그래 맞다. 저곳을 올라가보는 거야... 그 다음날 빙벽장비를 가지고 현장에 도착하여 등반을 해보니 얼음과 같이 바일 타격 시 손목에 전해오는 전율이 그대로였다. 그 당시 필자의 토벽등반은(최초) 5년이 지난(94년) 지금도(99년) 황홀한 느낌으로 전해온다.

그 이후 2년 동안은 토벽등반이란 것을 내 자신도 잊고 있다가 만 3년 만에 정찬이와 실폭 사건 이후로 계속되어 왔다. 처음에 신장에서 토벽등반을 할 때는 단순한 흙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질학적으로 돌에서 흙으로 퇴색되어 가는 자연적인 과정에서 여러 가지 흙의 종류(또는 바위가 퇴색되어 가는 단단함의 차이)를 맞이하게 된다.
문제는 등반자가 추락 시 확보물이 견뎌 주냐는 것이었으며 어떠한 확보물을 구비해야만 되는 것인지가 미지수이였다. 즉, 단단한 바위에서 토질로 변화되는 과정에 따라 빙벽등반과 달리 확보물 장비가 틀려진다는 것이다.(필자가 토벽등반을 하면서 6∼7가지에 흙에 대한 각양각색에 성질이 있었다.)

확보물의 종류는 스노우바(확보지점 구축) 스크류, 스나그, 바트 훅, 나이프 하켄, 우드팩 등 암/빙벽에서 사용되는 확보물 장비보다 훨씬 많이 요구된다. 하물며 텐트팩까지 사용한 적이 있었다. 확보물을 설치한 후 주의할 점은 설치한 후 뒤쪽 방향으로 체중을 향하지 말아야 된다. 그 이유는 바위에 볼트나 얼음에 스크류처럼 흙에 특성상 그것(바위/얼음)과 달리 흙은 물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밑으로 하중을 실어주면 완벽하게 체중 및 추락을 방지해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확보물 설치 시 숙련된 확보물 종류의 선택과 설치법은 빙벽등반의 행위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과정이란 것이다. 필자가 토벽등반을 초창기에 할 때는 스크류와 스나그만을 가지고 확보물로 사용했다. 흙에서는 돌리는 스크류보다 때려 박는 스나그가 월등히 유리하고 흙에 공간이 단단한 곳에서는 스크류를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등반 중15m이상 추락한 적도 있었으나 확보물이 빠지는 일은 없었으며 하강도 하고 톱로핑도 해보았지만 터지는(빠지는) 일은 전혀 없었으며 그 후 많은 토질의 대상지를 등반하면서 위와 같은 또 다른 확보물 장비들이 더욱 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젠 토벽등반 대상지에 관해 알아보자. 우선 글자 그대로 흙으로만 형성된 경사를 오르는 대상지가 아니다.
그 경사(대상지)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크기에 돌들을 만나게 되며 그 과정에서 믹스등반/드라이튤링의 등반과정이 진행되는 행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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