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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반 85기 3차 교육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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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경선 작성일10-10-22 12:57 조회3,149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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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백(Lay back) : 크랙을 잡고 발을 밀어주며 올라가는 자세

· 재밍(amming) : 바위의 갈라진 틈(크랙)에 신체부 즉 손과 발, 팔 등을 끼워 넣어서 지지력을 얻는 행위

· 펌핑아웃(Pumping out) : 등반시 힘을 모두 사용해서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는 상태

3차교육 야바위의 밤을 위해 침낭과 비박색을 새로 샀다.

야간 실전 암벽 등반이라니...

1차와 2차교육에 비해 갑자기 난이도가 훌쩍 높아지나보다...

밤은 이미 깊었다.

올려다본 바위는 까마득하게 높았고 아찔한 경사였다.

박강사님의 선등. 1구간 3피치중 1피치까지 올라가기까지가  너무 미끄럽고 힘든 곳이었다.

발이 아프도록 꽉끼는 암벽화를 신고 대기 상태로 한시간 두시간이 훌쩍 지난다.

애초부터 내가 그곳을 정석대로 내힘으로 올라갈 수 있으리라고 나 자신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앞의 두사람이 거의 펌핑아웃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왠만큼은 발버둥쳐야 하리라는 각오는 있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앞사람들 때문에 지체된 시간 때문에

뒤에 남은 나에게까지 충분히 버벅거릴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확보자의 배려로 자일은 풀텐션 상태였음에도 나는 버벅거렸고

결국은 등강기를 사용해 끌어주면서야 올라 갈 수 있었다.
  
땀으로 범벅이 되고 탈진한 남자들 네 사람과

몇번 미끌어지고 여기저기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너무 싱겁게 등반을 마친 내가 같은 느낌일 수는 없을 것이다.

뭔가 미진하고...자신이 좀 한심했지만...고생을 모르는 철 없는 안도감도 있었다.  

안산 정상의 봉수대에 서니 밤 안개가 가득했다.

도심의 야경이 흐릿하게 반짝인다. 어쨌든 새벽이고 곧 날이 밝아올 것이다.

내 차례에 제대로 힘을 쓰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안간힘과 몸부림을 지켜 보면서 지새운 야간 암벽의 밤.

교육장의 대슬랩을 벗어난 실전 암벽...실전하강도 처음이다.

하강기에 의해 내 속도를 제어하면서 내려오면 되기에 별 어려움 없이 내려올 수 있었다.

바위에서 내려와 훤하게 날이 밝는 가운데

찌게를 끓여 소주잔을 기울이며 노래를 불렀다.

다들 취기가 오르고...

교장샘은 첫사랑 중학교 음악선생님을 위해 만들었었다는 노래를 부르고

나는...내일이면 잊으리로 시작되는 임주리의 노래를 불렀다.

가을 햇살이 눈을 찌르듯 강렬해지는 가운데 새로산 비박색안에 침낭을 펴고 들어가 누웠다.

메트리스를 깔았지만 바닥이 너무 딱딱해서 몸이 배긴다...

비박...쉬운일이 아니구나...ㅜ.ㅡ

하긴, 인생에 쉬운일이 뭐 있으랴마는.

두시간쯤 잤을까

84기 선배들이 전통대로 아래 식당에서 주문한 아침밥을 가지고 와서는 대슬랩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말소리에 잠이 깨고...다른 사람들도  잠에서 깨어났다...

비몽사몽간에 먹었지만 맜있었던 아침밥.  

암벽을 하면서는

배고파서 힘못쓰는 것도 아니면서

꾸역꾸역 많이 먹는 버릇이 생겼다. ㅜ.ㅡ

졸업생과 재학생으로 시끌벅적해진 공간에서

선후배 대항 스피드 경기와 난이도 경기를 했다.

84기들은 85기와 다르게 큰 덩치에 근육질의, 산 사나이의 포스가 느껴지는 사람들이었다.

대슬랩에서의 스피드경기...

처음에는 그렇게 벌벌 떨며 올랐던 곳이지만 몇번째 오르다보니 조금 나아졌다.

기록상으로는 거의 꼴지에 가까웠지만 꼴찌는 아니어서 1분이 안되는 시간에 나도 완등을 했고

루트를 딱 지정해서 쵸크로 그려진 곳만을 밟고 손을 짚어 올라가는 난이도코스에서도 어쨌든 완등을 했다.

그러나...하강...아래쪽에서 8자 하강기로 확보를 봐주고 있지만

나는 로프에 매달려 있어 하강 속도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평소의 내 속도보다 두세배 이상 빠른 속도에 비명을 지른다...
  
내가 겁내는 것 : 스피드...
  
점심을 먹고나서 다시 실전등반으로 수직크랙으로 이동했다.

길이는 길지 않지만 만만치 않아보이는 바위다...

레이백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앞사람들이 다 올라가도록 그 몸부림을 보고 있다가

내가 올라갈 차례가 되었다.

지난 밤의 야바위처럼

안되면 쥬마를 써서 끌어올려 주겠지...하는 안이한 기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제대로 내 힘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아니 적어도 펌핑아웃 될만큼 안간힘을 써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버벅대는 동안

먼저 등반한 사람들은 봉수대까지 다른 바위로 이동하고

아래쪽의 박강사님은 해드랜턴을 가지러 교육장으로 가고

확보자와 나

두사람만 남은 상황이 되었다.

나는 왜 여기 매달려 있을까

올라갈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곳

위쪽 크렉에 테이핑을 한 손을 집어넣고

아래쪽 크렉에 발끝을 넣고 비틀어 몸무게를 지탱하느라 손과 발이 아프다.

설상가상으로 손에 힘을 주어 몸을 위로 당겨 올리려 할 때마다

손에서 계속 쥐가 나서 제대로 힘을 줄 수가 없다...

양말도 신지 않는 얇은 암벽화 가죽과 맞붙은 발가락들이 지르는 비명이 그대로 입을 통해 나온다...

아...아파...

아플 때 아프다고 말 하는 것이 통증을 경감시켜 준다고 누가 그랬나...

인어공주는 인간의 두 다리를 얻었지만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이 아팠다고 했던가.

나는 무엇과 이 고통을 맞바꾸었나. 내가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1피치에서 앞자일과 뒷자일을 바꾸는 것은 당황하지 않고 잘 했었는데

2피치에서 간신히 앞뒤자일을 바꾸었다고 생각했지만

올라가지지 않는다....

확보자는 풀텐션으로 나를 끌어올리려 하지만

줄을 잡아도 계속되는 슬립...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대체 무엇을 바라고 이곳에 매달려 있는 것일까...
 
교장샘이 와서 달래며 끌어올려 줄 때야

앞뒤 자일을 잘 못 바꿔서 매듭이 퀵토르에 걸려 올라가지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여러번 배웠던 내용은 다 어디가고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바위의 위는 시내의 야경이 환히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나는 왜 울었을까...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평화롭고 안락한 취미생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왜 하필 나는 이런 일을 자청했을까

내 안에 어떤 피가 흐르기에 나는 이런 바위에서 고행같은, 자학같은 아픔과 힘겨움을  선택했을까.

아무도 내게 강요하지 않아도 내가 선택하고야 마는 이런 일들

나는 왜 그렇게 살 수 없었나?

그저 한가롭고 평화롭게.

조금은 무료하게...

아니,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었다. 다만 평화롭게. 안락하게.

모든 것이 보장되어 있는 삶에

더 이상의 욕심부리지 않고.

생에 아무것도 더 욕심내지 않아도 될 시점에서

나는 무엇을 바랬던가...

그래놓고는 등반이 마치 신앙과도 같이 내게 무언가를 증명해 주리라 기대 한 것인가?

나의 존재에 대한 확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내가 끝내 견뎌내리라는 확신?

바위를 오르면

이 겁많은 내가 그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용감해 질 수 있으리라고 믿었나?

간결한 생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가질 수 있으리라고?

나는...다만...

아주 작은 어려움에도 엄살을 떨고 어리광을 부리며 살아왔을 뿐이었다.

등반을 한다고 해도, 급경사의 바위에 매달린다고 해도 그 살아온 방식은 그대로 드러날 뿐이었고

앞으로 무엇이 변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손에 쥐가 난다고, 발이 미끄러지진다고 당황해서 비명을 지르면서 깨달았을 뿐이었다.

나의 울음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바위가 어려워 보이면 뒤에 서려고 하고,

남들이 힘들게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지레 겁을 먹고

시작도 제대로 안하고 마음으로부터 포기하고,

조금 해 보는 척 하다가는 확보자에 기대려하고

몇번 미끄러지면 비명을 지르고

살갗이 까지거나 멍이 드는 정도로 겁을 집어먹고

당황해서는 앞자일과 뒷자일을 바꿀 때 황당한 실수를 하고

결국은 뭐가 뭔지 알수 없는 절망감에 휩싸여 울음이 터져나오고 마는...

나 자신에 대한 깨달음.

내가 변하지 못하리라는 절망감.

내 앞에 놓인 앞으로의 생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까지나 그대로일 것이라는 공포감...

바위를 오르면 이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으리라고

나는 ...감히 그런 꿈을 꾸었던 것이었을까?

겁이 많은 것은 내겐 오랜 컴플렉스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혼자 있을 때면

예전에 읽은 책이나 본 영화의 무서운 장면이 총출동을 하기도 하고

바스락 소리에도 혼자 기겁을 하며 놀라고

조금만 어려워 보이는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빠져 나갈 생각만 하는

그런 삶을 살지 않았던가

그런 것이 자신의 본성이라면...그저  그렇게 살면 될 것을 왜 이런 일을 하려고 마음은 먹었던 것일까.

내가 동경하는 삶과

나의 천성은 어쩌면 결코 닮지않은 무관한 것이련만

나는 왜 불쑥불쑥 내게 있지도 않은 용기와 무모함을 그리도 꿈꾸는 것일까.

꿈꾸던 것들을 어쩌다 실행에 옮기고는

오래지 않아 나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고,

쉽게 절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행했던 그 무모함을

곱씹어 후회하고

그리고...

도망칠 곳이 없어 울면서도

누군가 손을 내밀어 끌어올려주기를 바라고 믿는 어리광으로...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대체 무엇을 배우는 것일까...

이 나이가 되도록, 아니 이 나이가 되어서

여전히 매번 똑 같은 방식으로

꿈꾸고 시도하고 포기하고 절망하고 어리광부리는

나에게

숱한 시행착오들은 무엇을 가르쳤고 나는 무엇을 배웠나...

쉬운 포기

쉬운 절망

쉬운 어리광

삶이 이런 것이 아니기를 바라기에 애초에 이곳에 온 것이었으면서

조금도 이제까지의 나를 벗어나지 못함을 결국 증명하고야 마는...

암. 벽. 등. 반.

나는 이런 나를 붙안고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일까...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나를 걱정해 건네주는 동기생들과 교장샘에게 담배 두 개피를 얻어 피우고

천천히 내려오는 하강길

무엇을 바라고 바위를 타는가...

무엇을 바라고 사는가...

눈물은 그쳤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유치환 "바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다.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댓글목록

이자훈님의 댓글

이자훈님의 댓글
작성일

그래요 사실 말을 안해도 모두들 서선생님과 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자 우리 85기 동기여러분 파이팅 한번 외치고 ^^

정완수님의 댓글

정완수님의 댓글
작성일

솔직하지 못한 제 자신을 보는 듯 하네요!  저도  똑같습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 바위를 타는지  계속해서 18! 18! 했습니다.  쉬게 포기하고, 쉽게 두려워하고, 쉽게 안주하고,,,,, 왠지 침울하고,  선생님과 똑같습니다.  그래도  슬슬 기다려 지는데요!  이번주엔 더 잘해봐야지!!  일요일에 뵙겠습니다.  화이팅~~!

박지원님의 댓글

박지원님의 댓글
작성일

서선생님이 안 나타나셔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무지 반가와요^^*
지금의 서선생님 마음은 85기 동기분들의 마음이자,
야간암벽등반을 하신 많은 권등 선배님들의 마음일 거예요.
지금은 아마도 만감이 교차하겠지만
교육이 끝날 때쯤에는 아마도 놀라운 등반력을 지닌 서선생님의 모습을 발견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서선생님 화이팅!!!

85기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구요, 일욜날 활기찬 모습으로 뵈요^^

나준호님의 댓글

나준호님의 댓글
작성일

동기님들의 말씀처럼 서로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사료됩니다.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을 극복함에 있어 좌절과 절망이 존재함은 인지상정이 아닐지요.
교장선생님 말씀처럼 우린 이제 3차 교육을 마쳤을 뿐입니다. 용기 잃지 마시고 긍정의
힘으로 함께 웅비하는 85기가 되길 희망합니다. 서선생님 ~~ *^ ^* 화이팅!!!

권기열님의 댓글

권기열님의 댓글
작성일

나도 서선생님 마음과  85기 여러분의 마음에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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