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인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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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준호 작성일10-11-06 11:06 조회2,575회 댓글4건본문
계곡이나 고갯마루, 작은 봉우리에서 몇번이나 아득히 먼 준령을 바라보았으나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높은 산을 알고 싶었고 오르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 확고한 신념과 인내력이 없었다.
인간의 생애에는 어떠한 일을 결정하는 시기가 있는 모양이다.
희망과 두려움이 머리속을 교차하는 가운데 나는 이미 권기열등산학교의
교육생이 되어 있었다.
기어 오른다는 것은 하나의 본능이 아닐까?
기어 오르는 즐거움, 발견하는 즐거움, 멀리 그리고 높은 곳을 바라보는
즐거움이야말로 알파니즘이 아닐까 싶다.
백운대에 오를 때 마다 무의식적인 시선이 인수봉을 향하곤 한다.
움직임이 없고 평온하며 관조적인 분위기에 감탄의 입벌림을 선사 받는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의 존재가 되어 산객들의 심금을 고요함으로 자아내게
해 주는 인수봉!
약속 장소인 도선사 앞 주차장에 도착한다.
따뜻한 커피가 몸 속을 스며든다. 지독한 몸살기에 머리가 지근지근~~~
컨디션이 나아짐을 느낀다.
많은 산객들의 분주함속에 정겨운 85기 동기님들의 모습이 해맑음으로 다가온다.
교장선생님의 인솔하에 늦가을의 정취를 가볍게 호흡하며 묵묵히 걸어간다.
마음속으로는 기쁘지만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 순간을 그토록 바라던 마음인데 지금 나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암벽 밑에서 나는 서툰 솜씨로 자일에 등강기를 설치한다.
이윽고 유강사님이 선등을 섰다. 이어 기반장님이 뒤를 잇는다.
그분들이 오르는 것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본다.
혼자가 된 나는 자일이 어떤것인가를 똑똑히 의식할 수 있었다.
자일이 암벽에 연해서 서서히 높아지는 것을 응시하고 있으려니
자일이 작은 구비를 치면서 움직였다.
자일은 팽팽히 당겨졌고 나는 오르기 시작했다.
내 친구 자일은 내가 발을 헛디뎌 아찔한 순간을 몇번이나 잡아 주었다.
다소 힘들었으나 커다란 기쁨속에 등반을 계속하여 유강사님곁에 까지 올랐다.
조금전에는 그분의 선등이 나를 감동시켰으나 지금은 부드러운 미소가 나를
안심시킨다.
인수봉에 올라선 것이다.
무한한 정숙과 신비에 쌓인 바위의 세계가 눈 앞 가득히 펼쳐저 있다.
조용히 주위를 둘러본다. 그저 막연히 느끼고 있던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용솟음 친다.
광대무변의 커다란 공간을 암시하는 삼각산이 백악의 조화로, 그리고 나의
발 아래는 공간의 깊이를 알려주는 수직의 높은 암벽이 일직선을 이루며
뚜렷하게 마주하고 있다.
근육의 피는 치돌고, 마음은 감동에 떨린다.
맑은 햇빛이 부드럽게 내려 쪼이는 자일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교장선생님의 하강 지시에 구호를 외친다.
권등85기 나준호 하강!
자일과 하강기가 마찰을 일으키며 스르륵 미끄러진다.
두발이 지면에 닿는다.
함께한 동기님을 행복했습니다. *^ ^*
[ 암벽에 대한 짧은 생각 ]
위험과 곤란이라는 전혀 다른 두개의 관념을 혼동치 말아야 겠다.
전자는 병적이나 후자는 건전하고 씩씩함이 아닐까.
산을 오르는 사람은 아름다움과 우정과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절대로 안이하고 서툰 위험은 삼가해야 겠다.
댓글목록
서경선님의 댓글
서경선님의 댓글흠...이런 문학적인 글을 쓰시다니...다시 보입니다.
이자훈님의 댓글
이자훈님의 댓글
과묵함 뒤엔 또 이런 면면이 있을 줄이야...
85기 동기님들보면 볼수록 참 매력적인 사람들이얌 ^^
박준영님의 댓글
박준영님의 댓글
맨 끝의 문장 "산을 오르는 사람은 .....절대로 안이하고 서툰 위험은 삼가해야 겠다" 의
말이 저의 가슴을 한번 더 철렁 내려앉게 합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은 무심코 지나가는 순간이었으나 자신은 오금을 저렸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요번 인수봉 등반에 하나 있읍니다.
인수봉 중간쯤 가서 옆으로 이동하는 루트 였는데 어려운 루트는 아니었읍니다. 제가 통과하고 맨뒤에 박강사님이 오실 차례였는데 박강사님이 저보고 확보를 보라고 하신더군요 갑자기 머리가 멍 해지면서 팔자매듭을 만들어 그것을 확보기에 걸고 "확보완료"라고 대답했읍니다. 그러고 나서 박강사님 이동에 맞추어 손으로 줄을 당기고 있었읍니다. 박강사님이 중간쯤 왔을때 "내가 지금 뭐하고있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군요... 비록 위험한 루트가 아닐지라도, 비록 추락해도 20미터밖에 안된다 하여도 절대 절대 절대 또 절대, 안전을 100% 확보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는 내가 움직이거나 동료가 움직이게 해서는 안됩니다.
제가 인수봉 등반에서 배운점은 암벽에 붙는 순간부터는 모든것(즐거움, 자존심,우쭐함,상대방배려)을 희생하더라도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암벽에 붙기 전까지는 즐거움이 최고예요...
정완수님의 댓글
정완수님의 댓글
아! 역시 교장선생님 눈은 정확해!!
항상 묵묵히 계셨는데, 언제 이런 멋진글을....
역시 멋지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