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겨울의 풍광에 취해, 얼음이 주는 뜨거운 행복에 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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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천규 작성일04-01-27 16:34 조회3,155회 댓글0건본문
그렇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느낌이 행복 아니고 무었이랴.
내 안의 내가 이승의 나에게 끊임없이 주문하는 삶-
\'숨쉬는 순간순간마다 후회없는 추억만들기\'
\'사활(死活)이 아닌 생활(生活)\',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설날 명절을 이용해 강행한 2박 3일간의 빙장순례!
참으로 값지고 소중한 여행이었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였다.
3일간 얼음을 찍고나면 생선가게 얼음처럼 얼음에서 비린내가 나리라.
그러나 어찌 된 일인가.
비린내는 커녕 빙벽등반의 마법에 걸려 아직도 몽환처럼
머릿속은 온통 하얀 얼음 생각뿐이다.
아직도 솜사탕 속같은 겨울의 꿈길을 거닐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등반에 대한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차서
그때, 구곡폭포 고드름 직빙을 넘어갈 때 좀더 공격적인 타격을 시도해 보았더라면
하는 마음 그득하다.
첫째날 - 가래비 야빙
가래비 빙장은 짙은 어둠 속에서도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몸짓으로 서 있었다.
권등 전용3빙장에 비하면 전장이 3배쯤 길어보인다.
야빙을 해야 하므로, 또 빡신 일정상 시간을 절약해야 하므로 조규택님과 함께
빙장 옆의 작은 산길을 걸어올라가 톱로핑을 걸었다.
이퀄라이징을 하고 도르레를 걸고 자일을 늘어 뜨리면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짙은 어둠속에서도 랜턴불빛과 함께 동료들의 모습이 보이고, 고도감이 공포로 다가와
나를 제압한다.
하강을 하면서 얼음을 살펴보니 매섭게 추운 날씨이건만 얼음 위로
조금씩 물이 흘러 내린다.
동료들이 등반을 시작하고, 빙장 한쪽 구석에 가보니 하얀 눈 위로 핏자국이 선명하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누군가가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증거.
맞다. 무엇보다 안전등반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다면 과감한 등반을 안전하게 즐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꾸준한 연습\' 그리고 \'고도의 집중력\'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생각을 오래 갖기엔 가래비의 얼음과 밤하늘이 너무 낭만적이다.
두번째 야빙을 통해 느끼는 얼음은 이제껏 내가 알아온 그 얼음이 아니다
마치 한 사내의 순수한 오름짓을 통해 재탄생하는 뜨거운 암컷과도 같다.
어둠 속으로 드러난 하얀 알몸을 더듬어 얼음의 급소를 찾아낸 클라이머가
한 치의 오차없이 정확히 바일로 타격했을 때 파득이며 무너지는 뜨거운 존재!
아아,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그 순간 올려다 본 밤하늘에서 불꽃놀이의 서막처럼 두런대며 내려오던 별들
축복처럼 전해오던 하늘의 메시지를.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는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정호승님의 시 <<우리가 어느 별에서>> 전문
둘째날 - 구곡빙폭
새벽 5시경 강촌에 도착하여 민박집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 8시경 기상하여 김은영님이 끓여준 떡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방으로 돌아와 짐을 꾸릴 때 교장선생님이 약봉지(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감기약)를 꺼내
한 입에 털어 넣는다.
봉화산 자락 매표소에서 서약을 했다.
모든 사고에 대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내용이다.
별로 기분좋은 서약은 아니나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흔쾌히 받아들인다.
전장 80M, 등반전장 62M의 구곡폭포.
이제 갓 빙벽등반에 입문한 내게는 경악스러운 대상으로 다가온다.
과연 내 실력으로 저기를 올라갈 수 있을까.
오늘따라 교장선생님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선등을 서려고 채비를 하신다.
조금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교장선생님이 작아지며 빙폭 상단으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다른 팀들이 무수한 낙빙을 일으키며 소란스런 가운데서도
단 한 개의 낙빙도 없이 무용수처럼 부드러운 동작으로 올라 가신다.
눈앞에서 사라진 후 무전기로 연락이 온다.
\"완료했습니다. 조규택씨부터 한 분씩 침착하게 올라 오세요.\"
걱정했던 탓이리라.
오늘따라 교장선생님의 목소리가 유난히 반갑게 들려 온다.
내 차례가 되어 중단부를 오를 무렵 위로 올라가던 다른 팀의 후등자가 추락을 먹는다.
남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오름짓으로 부산한데 조금전 추락을 한 사람이
뒤에서 불러 부탁을 한다.
올려다 보니 그 사람의 오른쪽 바일이 빙벽에 꽂혀있다.
초보자라고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말하자 그래도 가능하면 회수해 달라고 한다.
왜 그리도 그 루트는 힘들어 보이던지...
겨우겨우 기어 올라 바일로 확보를 하려니 연빙이라 타격할 곳이 마땅치 않다.
그냥 한 손으로 왼쪽 바일을 잡은 채로 추락자의 바일을 빼내어 조심스럽게
하네스의 비나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제발 한 번에 비나 속으로 들어가 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한 번에 넣지 못 하면 바일을 떨어뜨릴 것 같은 전율에 떨며.
다른 등반자의 바일을 회수하고 나니 온몸이 탈진한 듯하다.
조금 휴식을 갖기 위해 안정된 곳에 바일 두 개를 깊숙히 찌르고
빙폭 하단을 내려다 본다.
밑으로 동료들의 모습이 보이고 멀리 하얀 눈속으로 우리가 올라온
등산로가 보인다.
이 느낌을 경험하지 못 한 자, 보지 못 한 자는 끝내 알지 못 하리.
차가운 얼음 위에서의 오름짓에 따라, 눈높이가 달라지고
그 달라지는 눈높이에 따라 새로운 구도로 들어오는, 이 멋진 겨울의 풍광을.
나는 개인적으로 조용한 등반이 좋다. 여러팀이 등반할 때라면
심지어 화이팅까지 눈빛으로 교감할 수 있는 그런 등반이 좋다.
오늘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권등의 모든 식구들은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낙빙을 만들지 않고
모두가 조용히 올랐다.
정말 만족스런 팀웍이었다.
써미트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여러 등산학교 학생들이 올라와 있다.
왠지 어수선하다.
만일 오늘 보이는 이 분위기가 평소의 모습이라면, 과정은 어찌 되었건
나는 제대로 된 등산학교에서 제대로 된 등반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다.
셋째날 - 권등3빙장
여전히 늦은 밤 다른 시골로 이동하였고 간밤엔 술을 제법 마셨다.
늘 술에는 야박한 교장선생님이 어제는 술을 조금 더 사자고 하셨다.
몸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이제 막 배운 초보생들을 80M 높이의 구곡빙폭에
모두 올리려다 보니 마음고생도 컸으리라.
(아니면 술에 대한 나의 불만이 새어 나가 교장선생님 귀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 )
아침에 일어나 차를 몰고 읍내로 나가 KBS 스포츠팀 PD를 픽업하였다.
빙장에서 바라클라바를 벗고 인터뷰에 응해 달라고 부탁 받았으나 거절하였다.
\'진 빚이 많아 도망 중이라 TV로 나가면 안 된다\'고 진지하게 거짓말을 하였으나
믿지 않아 하는 눈치다.
사실은 빙벽의 맛을 접하지 못 한 가족들은 우선 위험하다는 생각을 할 거고
따라서 내가 山으로 갈 때마다 걱정할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교장선생님께서 \'끌루와르의 고드름 오버행 구간 루트로 가되
다리를 협곡 밖으로 빼지 말고 올라 보라\' 하신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온갖 자세가 나오며 발동작이 엉키고 한꺼번에
많은 질문들이 생긴다.
내려와 교장선생님께 여쭈었더니 상세히 가르쳐 주고 얼음에 붙어 시범까지 보이신다.
직접 바일까지 빌려 주시어 과감한 N바디 공격법을 배우고 나니
한꺼번에 필이 오며 모든 궁금증이 사라진다.
어찌나 감사하고 신이 나던지...
나는 전문클라이머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혹여 가능한 조건이 된다 하더라도 될 마음이 없다.
그러나 등반하는 순간, 정신력에 있어서 만큼은 전문클라이머에게도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내가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할 때
바위나 얼음도 진지하게 화답할 거라 믿기 때문이다.
방송국 사람이 추락장면을 촬영하지 못 했다고 하여
교장선생님의 지시로 빙벽에 올라 추락 연출을 하였다.
암벽반 과정에서 받은 추락법과 빙벽반에서의 피크웍 제동을 떠올리면서 두 번
과감하게 떨어졌다.
내심으론 아내나 딸이 방송을 보고 매일 이렇게 위험한 산행을 한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어머니가 보시면 또다시 힘들게 마련한 등산장비를 보전하기 어려울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섰다.
전철이 끊겨 허승열님이 차로 가까운 동네까지 데려다 주었다.
참으로 송구한 마음뿐이다.
허승열님과 조규택님을 보면 내가 배워야 할 진정한 선배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빙장에서건 주방에서건 늘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솔선수범하신다.
나도 어느팀에서나 두 분처럼 행동하고 실천하리라 다짐해 본다.
이미 월요일이 시작된 시간,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서 생각한다.
진정한 알피니즘이란 무었일까?
\'홍익하며 굴하는 않는 오름짓의 도전정신\'이 아닐까.
(하하, 맞고 멋있는 것 같긴 한데 표현이 너무 어렵다.^^)
정감 넘치던 순간들과 빙벽반 7기 동기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꿈나라로 들어간다.
때로는 빡빡대고 기어오르며 때로는 빌레이를 보며 마주쳤던 따스한 눈빛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내일이면 또 많은 일상의 크럭스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래, 까짓거 山에서 바우에서 얼음에서 배운 깡다구로
열씨미 열씨미 돌파해 보자구 중얼거리면서...
2박 3일간의 빙장순례에 대한 작은 소감을 마감한다.
교장선생님, 유강사님 그리고 빙벽반 7기 여러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특히 총무님의 우럭매운탕은 일품이었습니다)
화이팅~~~
내 안의 내가 이승의 나에게 끊임없이 주문하는 삶-
\'숨쉬는 순간순간마다 후회없는 추억만들기\'
\'사활(死活)이 아닌 생활(生活)\',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설날 명절을 이용해 강행한 2박 3일간의 빙장순례!
참으로 값지고 소중한 여행이었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였다.
3일간 얼음을 찍고나면 생선가게 얼음처럼 얼음에서 비린내가 나리라.
그러나 어찌 된 일인가.
비린내는 커녕 빙벽등반의 마법에 걸려 아직도 몽환처럼
머릿속은 온통 하얀 얼음 생각뿐이다.
아직도 솜사탕 속같은 겨울의 꿈길을 거닐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등반에 대한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차서
그때, 구곡폭포 고드름 직빙을 넘어갈 때 좀더 공격적인 타격을 시도해 보았더라면
하는 마음 그득하다.
첫째날 - 가래비 야빙
가래비 빙장은 짙은 어둠 속에서도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몸짓으로 서 있었다.
권등 전용3빙장에 비하면 전장이 3배쯤 길어보인다.
야빙을 해야 하므로, 또 빡신 일정상 시간을 절약해야 하므로 조규택님과 함께
빙장 옆의 작은 산길을 걸어올라가 톱로핑을 걸었다.
이퀄라이징을 하고 도르레를 걸고 자일을 늘어 뜨리면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짙은 어둠속에서도 랜턴불빛과 함께 동료들의 모습이 보이고, 고도감이 공포로 다가와
나를 제압한다.
하강을 하면서 얼음을 살펴보니 매섭게 추운 날씨이건만 얼음 위로
조금씩 물이 흘러 내린다.
동료들이 등반을 시작하고, 빙장 한쪽 구석에 가보니 하얀 눈 위로 핏자국이 선명하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누군가가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증거.
맞다. 무엇보다 안전등반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다면 과감한 등반을 안전하게 즐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꾸준한 연습\' 그리고 \'고도의 집중력\'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생각을 오래 갖기엔 가래비의 얼음과 밤하늘이 너무 낭만적이다.
두번째 야빙을 통해 느끼는 얼음은 이제껏 내가 알아온 그 얼음이 아니다
마치 한 사내의 순수한 오름짓을 통해 재탄생하는 뜨거운 암컷과도 같다.
어둠 속으로 드러난 하얀 알몸을 더듬어 얼음의 급소를 찾아낸 클라이머가
한 치의 오차없이 정확히 바일로 타격했을 때 파득이며 무너지는 뜨거운 존재!
아아,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그 순간 올려다 본 밤하늘에서 불꽃놀이의 서막처럼 두런대며 내려오던 별들
축복처럼 전해오던 하늘의 메시지를.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는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정호승님의 시 <<우리가 어느 별에서>> 전문
둘째날 - 구곡빙폭
새벽 5시경 강촌에 도착하여 민박집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 8시경 기상하여 김은영님이 끓여준 떡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방으로 돌아와 짐을 꾸릴 때 교장선생님이 약봉지(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감기약)를 꺼내
한 입에 털어 넣는다.
봉화산 자락 매표소에서 서약을 했다.
모든 사고에 대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내용이다.
별로 기분좋은 서약은 아니나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흔쾌히 받아들인다.
전장 80M, 등반전장 62M의 구곡폭포.
이제 갓 빙벽등반에 입문한 내게는 경악스러운 대상으로 다가온다.
과연 내 실력으로 저기를 올라갈 수 있을까.
오늘따라 교장선생님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선등을 서려고 채비를 하신다.
조금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교장선생님이 작아지며 빙폭 상단으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다른 팀들이 무수한 낙빙을 일으키며 소란스런 가운데서도
단 한 개의 낙빙도 없이 무용수처럼 부드러운 동작으로 올라 가신다.
눈앞에서 사라진 후 무전기로 연락이 온다.
\"완료했습니다. 조규택씨부터 한 분씩 침착하게 올라 오세요.\"
걱정했던 탓이리라.
오늘따라 교장선생님의 목소리가 유난히 반갑게 들려 온다.
내 차례가 되어 중단부를 오를 무렵 위로 올라가던 다른 팀의 후등자가 추락을 먹는다.
남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오름짓으로 부산한데 조금전 추락을 한 사람이
뒤에서 불러 부탁을 한다.
올려다 보니 그 사람의 오른쪽 바일이 빙벽에 꽂혀있다.
초보자라고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말하자 그래도 가능하면 회수해 달라고 한다.
왜 그리도 그 루트는 힘들어 보이던지...
겨우겨우 기어 올라 바일로 확보를 하려니 연빙이라 타격할 곳이 마땅치 않다.
그냥 한 손으로 왼쪽 바일을 잡은 채로 추락자의 바일을 빼내어 조심스럽게
하네스의 비나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제발 한 번에 비나 속으로 들어가 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한 번에 넣지 못 하면 바일을 떨어뜨릴 것 같은 전율에 떨며.
다른 등반자의 바일을 회수하고 나니 온몸이 탈진한 듯하다.
조금 휴식을 갖기 위해 안정된 곳에 바일 두 개를 깊숙히 찌르고
빙폭 하단을 내려다 본다.
밑으로 동료들의 모습이 보이고 멀리 하얀 눈속으로 우리가 올라온
등산로가 보인다.
이 느낌을 경험하지 못 한 자, 보지 못 한 자는 끝내 알지 못 하리.
차가운 얼음 위에서의 오름짓에 따라, 눈높이가 달라지고
그 달라지는 눈높이에 따라 새로운 구도로 들어오는, 이 멋진 겨울의 풍광을.
나는 개인적으로 조용한 등반이 좋다. 여러팀이 등반할 때라면
심지어 화이팅까지 눈빛으로 교감할 수 있는 그런 등반이 좋다.
오늘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권등의 모든 식구들은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낙빙을 만들지 않고
모두가 조용히 올랐다.
정말 만족스런 팀웍이었다.
써미트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여러 등산학교 학생들이 올라와 있다.
왠지 어수선하다.
만일 오늘 보이는 이 분위기가 평소의 모습이라면, 과정은 어찌 되었건
나는 제대로 된 등산학교에서 제대로 된 등반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다.
셋째날 - 권등3빙장
여전히 늦은 밤 다른 시골로 이동하였고 간밤엔 술을 제법 마셨다.
늘 술에는 야박한 교장선생님이 어제는 술을 조금 더 사자고 하셨다.
몸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이제 막 배운 초보생들을 80M 높이의 구곡빙폭에
모두 올리려다 보니 마음고생도 컸으리라.
(아니면 술에 대한 나의 불만이 새어 나가 교장선생님 귀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 )
아침에 일어나 차를 몰고 읍내로 나가 KBS 스포츠팀 PD를 픽업하였다.
빙장에서 바라클라바를 벗고 인터뷰에 응해 달라고 부탁 받았으나 거절하였다.
\'진 빚이 많아 도망 중이라 TV로 나가면 안 된다\'고 진지하게 거짓말을 하였으나
믿지 않아 하는 눈치다.
사실은 빙벽의 맛을 접하지 못 한 가족들은 우선 위험하다는 생각을 할 거고
따라서 내가 山으로 갈 때마다 걱정할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교장선생님께서 \'끌루와르의 고드름 오버행 구간 루트로 가되
다리를 협곡 밖으로 빼지 말고 올라 보라\' 하신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온갖 자세가 나오며 발동작이 엉키고 한꺼번에
많은 질문들이 생긴다.
내려와 교장선생님께 여쭈었더니 상세히 가르쳐 주고 얼음에 붙어 시범까지 보이신다.
직접 바일까지 빌려 주시어 과감한 N바디 공격법을 배우고 나니
한꺼번에 필이 오며 모든 궁금증이 사라진다.
어찌나 감사하고 신이 나던지...
나는 전문클라이머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혹여 가능한 조건이 된다 하더라도 될 마음이 없다.
그러나 등반하는 순간, 정신력에 있어서 만큼은 전문클라이머에게도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내가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할 때
바위나 얼음도 진지하게 화답할 거라 믿기 때문이다.
방송국 사람이 추락장면을 촬영하지 못 했다고 하여
교장선생님의 지시로 빙벽에 올라 추락 연출을 하였다.
암벽반 과정에서 받은 추락법과 빙벽반에서의 피크웍 제동을 떠올리면서 두 번
과감하게 떨어졌다.
내심으론 아내나 딸이 방송을 보고 매일 이렇게 위험한 산행을 한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어머니가 보시면 또다시 힘들게 마련한 등산장비를 보전하기 어려울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섰다.
전철이 끊겨 허승열님이 차로 가까운 동네까지 데려다 주었다.
참으로 송구한 마음뿐이다.
허승열님과 조규택님을 보면 내가 배워야 할 진정한 선배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빙장에서건 주방에서건 늘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솔선수범하신다.
나도 어느팀에서나 두 분처럼 행동하고 실천하리라 다짐해 본다.
이미 월요일이 시작된 시간,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서 생각한다.
진정한 알피니즘이란 무었일까?
\'홍익하며 굴하는 않는 오름짓의 도전정신\'이 아닐까.
(하하, 맞고 멋있는 것 같긴 한데 표현이 너무 어렵다.^^)
정감 넘치던 순간들과 빙벽반 7기 동기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꿈나라로 들어간다.
때로는 빡빡대고 기어오르며 때로는 빌레이를 보며 마주쳤던 따스한 눈빛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내일이면 또 많은 일상의 크럭스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래, 까짓거 山에서 바우에서 얼음에서 배운 깡다구로
열씨미 열씨미 돌파해 보자구 중얼거리면서...
2박 3일간의 빙장순례에 대한 작은 소감을 마감한다.
교장선생님, 유강사님 그리고 빙벽반 7기 여러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특히 총무님의 우럭매운탕은 일품이었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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