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기 졸업식을 앞두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안영민 작성일04-04-17 22:05 조회2,538회 댓글0건본문
드디어 졸업입니다. 두근두근...
근데 먼저 교장선생님과 여러 선배님들, 그리고 동기들께 양해부터 구해야겠습니다.
처가의 결혼식 때문에 18일 일요일 교육은 참석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아직 등반실력이 모자란 것 투성이라 교육만큼은 충실하게 받아야함에도 도저히 참석할 상황이 못되네요. 결혼식 마치는대로 일단 졸업식에는 부지런히 밟아 가겠습니다. 특별보충교육까지 잡아주신 교장선생님께 특히 죄송합니다.
정말 제가 졸업을 하긴 하는군요.
2004년 새해를 맞아 뭔가 인생의 새로운 활력을 찾아보자는 고민끝에 선택한 것이 암벽등반이었습니다. 등산은 꽤나 좋아했지만 학교졸업 후 사회에 나와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놓고 하다보니 1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워킹 등반조차 1년에 몇 번 가보지 못하는새 늘어나는 것은 허리둘레요 불어나는 것은 몸무게였습니다. 또 그 틈을 비집고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는 그런 마음만 독버섯처럼 자라났습니다.
그러다 작심하고 1월 13일 등산학교 신청과 동시에 그날 저녁 바로 우리의 권기열 교장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사실 권등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게 없었습니다. 단지 가장 먼저 개강한다는 이유 하나였죠. 근데 어쨌든 올해 들어 제가 선택한 일중 가장 잘한 것은 \'권등\'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1월 13일 저녁 장비점에서 만난 교장선생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저런 눈매를 가진 사람이라면 뭔가를 의지해도 되겠다\' 싶어 손수 골라주는 장비를 하나둘씩 챙기고 거금을 카드로 결제하면서(아직도 이 돈 갚느라 고생중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뭔가 뿌듯했죠.
그리고 두 달을 기다리는데 시간이 왜 이리 더딘지...
이제와 생각하면 5주 내내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고생한 것이 너무 힘들어 개강 전 두 달 동안 실내암장이라도 찾아 체력훈련이라도 해놓을 걸 하는 후회도 있지만 아무튼 드디어, 마침내 3월 14일이 왔습니다.
첫주차 교육,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을 강조하며 여러가지 매듭법을 배우고 하강법을 익히는데 이때만 해도 여유가 있었죠. 자신만만, 패기만만.
그러나 그 마음이 두려움과 막막함, 후회를 넘어 c8, c8 소리가 터지기까지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무대뽀 대슬랩 야간등반\'. 진짜 부들부들 떨며 오른 길이었습니다. 내손으로 내발로 이곳을 올랐다는 기쁨을 느낄새도 없이 확보줄에 매달려 한숨만 내쉬었죠.
늦은 뒤풀이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솔직히 다음주 교육에 계속 나올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틀이 지나니 슬슬 안산 암장이 그리워지대요. 교육이 기다려지고.
2주차 교육.
가장 중요한 확보법을 배웠습니다. 등반을 못하는 것은 용서가 되지만 확보에 실패하는 것은 절대 용서가 안 된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새겨들으며 문득 \'암벽등반의 철학\'을 생각해봤습니다. 자일에 생명을 함께 건 동지, 그들이 나의 목숨을 지켜내고, 나 역시 그들의 목숨을 책임진다는 암벽의 철학은 어느새 새로운 인생관으로 와 닿았습니다.
추락법을 교육하다 양 발목이 돌아가는 바람에 며칠씩 침 맞으러 다녔지만 그래도 일요일이 기다려집디다. 바위가 내 삶 속으로 서서히 들어오고 있음을 실감한 2주차 교육이었습니다.
3주차 교육. 이름하여 \'야바위 교육\'
정말 고된 하루밤이었지만 그 고됨만큼 새로운 기쁨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밤새 바위에 매달려 펌핑난 양손을 털고 또 털고, 추위와 피로와의 싸움도 잠깐 어느새 잠든 서울의 정경위로 여명의 햇살이 비춰올 때, \"아...\' 하는 깨달음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바위를 타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인수봉을 오르는 클라이머들의 우아한 손발짓이 부러워서도 아니었고, 암벽장비 차림의 바위꾼들의 자세 속에 묻어나는 뭔가 특별함에 솔깃해서도 아니었고, 단지 한계에 도전하고 싶은, 그러나 도저히 혼자서는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기에 동지와 더불어 펼치는 오름짓에 한번쯤 내 모든 것을 걸어보자는 그런 마음에서였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3주를 넘어서니 조금씩 자신감도 붙고, 또 여유가 생겨났습니다.
4주차 교육. 인수봉 등반.
꿈에 그리던 인수봉을 내가 오른다? 긴장과 두려움, 기대와 설렘으로 한 주를 기다리다 드디어 인수봉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인수를 오르는 내내 3주 동안 안산 암장에서 갈고 닦은 실력이 그래도 이 만큼 성장했구나 싶어 뿌듯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동기들 모두 내딛는 발걸음에 여유가 묻어났습니다. 한두번의 추락정도야 툴툴 털면서 한발한발 위로 오르다보니 어느새 인수 정상에 이르렀습니다.
그때의 마음을 어떻게 몇 줄 글로 표현하겠습니까? 다만 한마디만 덧붙인다면 인수봉이 나에게 거대한 자신의 품을 열어주었다는 것, 왕초보 클라이머의 가슴에 인수의 그림자가 잠시 머물러갔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새로운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5주차 교육. 선등시험.
아무리 쉬운 5.7, 5.8 루트라고해도 역시 선등은 선등입니다. 한치의 실수도, 자만도, 두려움도 용납되지 않는 선등의 세계는 마음을 비우고 오로지 바로 위의 목표물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시켜야만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올라서서 확보줄 걸고 내려다보니 제가 무척 대견했습니다. 아, 이 길을 두손과 두발로 내가 올라왔구나. 자일 하나에 생명을 걸고, 나를 확보해주는 동지를 믿으며 내가 이 길을 올라섰구나. 왜 5주간 교육의 꽃이 선등시험이며, 선등시험만이 5주간 교육의 성과를 오롯이 검증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선등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기까지 지난 5주간의 교육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습니다. 두려움과 고통, 기쁨과 환희, 다시 긴장과 신중...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제 졸업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5주 동안 제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올해 초 제가 찾고자 했던 새로운 활력, 인생의 새로운 자극을 얻은 것은 물론이요, 그 인생을 함께 나눌 스무 명의 동지를 얻었고, 그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키워내는데 피와 살이 될 수많은 선후배를 만났습니다.
하나를 얻고자 권등을 선택했는데 권등은 제게 하나만이 아닌 다섯, 아니 열을 주었습니다.
그저 고맙고 뿌듯할 뿐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내일 졸업식장에 가겠습니다.
이제 저의 바위사랑은 막 둥지를 벗어난 아기새와 같습니다. 대지를 품고 창공을 향해 날개짓할 때까지 권등의 품이 지금보다 더 많이 필요합니다.
교장 선생님과 강사님, 그리고 여러 선배님들께 다시 무거운 짐을 드립니다.
부족한 31기를 더 큰 길로 이끌어주십시오.
그동안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권등을 사랑합니다. 모든 권등 가족을 사랑합니다.
(32기 후배님들, 저의 짧은 5주 교육감상문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열심히 하십시오. 그리고 스스로가 얻고자 했던 것을 한분도 빠짐없이 얻길 기원합니다.)
근데 먼저 교장선생님과 여러 선배님들, 그리고 동기들께 양해부터 구해야겠습니다.
처가의 결혼식 때문에 18일 일요일 교육은 참석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아직 등반실력이 모자란 것 투성이라 교육만큼은 충실하게 받아야함에도 도저히 참석할 상황이 못되네요. 결혼식 마치는대로 일단 졸업식에는 부지런히 밟아 가겠습니다. 특별보충교육까지 잡아주신 교장선생님께 특히 죄송합니다.
정말 제가 졸업을 하긴 하는군요.
2004년 새해를 맞아 뭔가 인생의 새로운 활력을 찾아보자는 고민끝에 선택한 것이 암벽등반이었습니다. 등산은 꽤나 좋아했지만 학교졸업 후 사회에 나와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놓고 하다보니 1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워킹 등반조차 1년에 몇 번 가보지 못하는새 늘어나는 것은 허리둘레요 불어나는 것은 몸무게였습니다. 또 그 틈을 비집고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는 그런 마음만 독버섯처럼 자라났습니다.
그러다 작심하고 1월 13일 등산학교 신청과 동시에 그날 저녁 바로 우리의 권기열 교장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사실 권등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게 없었습니다. 단지 가장 먼저 개강한다는 이유 하나였죠. 근데 어쨌든 올해 들어 제가 선택한 일중 가장 잘한 것은 \'권등\'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1월 13일 저녁 장비점에서 만난 교장선생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저런 눈매를 가진 사람이라면 뭔가를 의지해도 되겠다\' 싶어 손수 골라주는 장비를 하나둘씩 챙기고 거금을 카드로 결제하면서(아직도 이 돈 갚느라 고생중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뭔가 뿌듯했죠.
그리고 두 달을 기다리는데 시간이 왜 이리 더딘지...
이제와 생각하면 5주 내내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고생한 것이 너무 힘들어 개강 전 두 달 동안 실내암장이라도 찾아 체력훈련이라도 해놓을 걸 하는 후회도 있지만 아무튼 드디어, 마침내 3월 14일이 왔습니다.
첫주차 교육,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을 강조하며 여러가지 매듭법을 배우고 하강법을 익히는데 이때만 해도 여유가 있었죠. 자신만만, 패기만만.
그러나 그 마음이 두려움과 막막함, 후회를 넘어 c8, c8 소리가 터지기까지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무대뽀 대슬랩 야간등반\'. 진짜 부들부들 떨며 오른 길이었습니다. 내손으로 내발로 이곳을 올랐다는 기쁨을 느낄새도 없이 확보줄에 매달려 한숨만 내쉬었죠.
늦은 뒤풀이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솔직히 다음주 교육에 계속 나올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틀이 지나니 슬슬 안산 암장이 그리워지대요. 교육이 기다려지고.
2주차 교육.
가장 중요한 확보법을 배웠습니다. 등반을 못하는 것은 용서가 되지만 확보에 실패하는 것은 절대 용서가 안 된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새겨들으며 문득 \'암벽등반의 철학\'을 생각해봤습니다. 자일에 생명을 함께 건 동지, 그들이 나의 목숨을 지켜내고, 나 역시 그들의 목숨을 책임진다는 암벽의 철학은 어느새 새로운 인생관으로 와 닿았습니다.
추락법을 교육하다 양 발목이 돌아가는 바람에 며칠씩 침 맞으러 다녔지만 그래도 일요일이 기다려집디다. 바위가 내 삶 속으로 서서히 들어오고 있음을 실감한 2주차 교육이었습니다.
3주차 교육. 이름하여 \'야바위 교육\'
정말 고된 하루밤이었지만 그 고됨만큼 새로운 기쁨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밤새 바위에 매달려 펌핑난 양손을 털고 또 털고, 추위와 피로와의 싸움도 잠깐 어느새 잠든 서울의 정경위로 여명의 햇살이 비춰올 때, \"아...\' 하는 깨달음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바위를 타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인수봉을 오르는 클라이머들의 우아한 손발짓이 부러워서도 아니었고, 암벽장비 차림의 바위꾼들의 자세 속에 묻어나는 뭔가 특별함에 솔깃해서도 아니었고, 단지 한계에 도전하고 싶은, 그러나 도저히 혼자서는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기에 동지와 더불어 펼치는 오름짓에 한번쯤 내 모든 것을 걸어보자는 그런 마음에서였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3주를 넘어서니 조금씩 자신감도 붙고, 또 여유가 생겨났습니다.
4주차 교육. 인수봉 등반.
꿈에 그리던 인수봉을 내가 오른다? 긴장과 두려움, 기대와 설렘으로 한 주를 기다리다 드디어 인수봉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인수를 오르는 내내 3주 동안 안산 암장에서 갈고 닦은 실력이 그래도 이 만큼 성장했구나 싶어 뿌듯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동기들 모두 내딛는 발걸음에 여유가 묻어났습니다. 한두번의 추락정도야 툴툴 털면서 한발한발 위로 오르다보니 어느새 인수 정상에 이르렀습니다.
그때의 마음을 어떻게 몇 줄 글로 표현하겠습니까? 다만 한마디만 덧붙인다면 인수봉이 나에게 거대한 자신의 품을 열어주었다는 것, 왕초보 클라이머의 가슴에 인수의 그림자가 잠시 머물러갔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새로운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5주차 교육. 선등시험.
아무리 쉬운 5.7, 5.8 루트라고해도 역시 선등은 선등입니다. 한치의 실수도, 자만도, 두려움도 용납되지 않는 선등의 세계는 마음을 비우고 오로지 바로 위의 목표물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시켜야만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올라서서 확보줄 걸고 내려다보니 제가 무척 대견했습니다. 아, 이 길을 두손과 두발로 내가 올라왔구나. 자일 하나에 생명을 걸고, 나를 확보해주는 동지를 믿으며 내가 이 길을 올라섰구나. 왜 5주간 교육의 꽃이 선등시험이며, 선등시험만이 5주간 교육의 성과를 오롯이 검증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선등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기까지 지난 5주간의 교육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습니다. 두려움과 고통, 기쁨과 환희, 다시 긴장과 신중...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제 졸업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5주 동안 제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올해 초 제가 찾고자 했던 새로운 활력, 인생의 새로운 자극을 얻은 것은 물론이요, 그 인생을 함께 나눌 스무 명의 동지를 얻었고, 그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키워내는데 피와 살이 될 수많은 선후배를 만났습니다.
하나를 얻고자 권등을 선택했는데 권등은 제게 하나만이 아닌 다섯, 아니 열을 주었습니다.
그저 고맙고 뿌듯할 뿐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내일 졸업식장에 가겠습니다.
이제 저의 바위사랑은 막 둥지를 벗어난 아기새와 같습니다. 대지를 품고 창공을 향해 날개짓할 때까지 권등의 품이 지금보다 더 많이 필요합니다.
교장 선생님과 강사님, 그리고 여러 선배님들께 다시 무거운 짐을 드립니다.
부족한 31기를 더 큰 길로 이끌어주십시오.
그동안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권등을 사랑합니다. 모든 권등 가족을 사랑합니다.
(32기 후배님들, 저의 짧은 5주 교육감상문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열심히 하십시오. 그리고 스스로가 얻고자 했던 것을 한분도 빠짐없이 얻길 기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