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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바위에서 만난 \'바람을 거스르며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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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동욱 작성일05-04-06 00:58 조회2,7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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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는

저에게는 언제나 침묵으로 다가 섭니다.

설령 내가 올랐다더라도

바위는

내가 바위를 이겼다고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아마 영원히 없을 겁니다.

겨우, 나 스스로

\'내가 이만큼 해 냈구나\'하는 만족감을 조금 얻을 뿐이겠지요.


그런 바위를 지난 일요일 새벽에 올랐을 때

여러분들처럼 저도 참으로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자일에 매달린 채 수십번 오르내리며

학생들을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께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도대체 선생님들은

투입 대비 산출, 투입 대비 수익을 따지지 못하면

사람대접 못받는 요즘 같은 세상에

차가운 바위에 뭐 그리 애착이 간다고,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단란한 주말을

한 두번도 아니고 몇 년씩 포기하고

주말 밤이면 밤마다 나타나서

무보수 등반 강사로 자일에 메달린 채,

고마움하나 제대로 표현못할 제자들을 위해

고함치고, 끌어 당기고, 밀어 주시면서

푸른 새벽을 맞이 하시는 겁니까.


다시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글귀가 제 머릿속을

휑 하니 지나가던 일요일 새벽 3시 였습니다.


서대문구청의 무관심과 냉대가 느껴지는 암장에서

목발짚고 개척한 바위들을 오르다 보니

성한 제 자신도 어쩔 줄 모르는 볼트 언저리들마다

그 투지와, 정신과 그리고 아픔들이 박혀 있음을 보았습니다.


계산 빠른 현대인에 속하는 제가 어림 셈을 해 보면

암벽시즌 일년동안 9기수를 배출하는 데

모든 기수들이 \'만땅\'을 채워도 연 매출액은 고착 4천 5백만원입니다.

39기가 3명이었음을 생각하면,

연 매출액은 형편없이 줄어들었을 터이지요.



게다가 교장이면 교사들에게 지시는 해도

몸소 시범을 보이는 학교는 제 평생 처음 입니다.

이른바 초급장교인 소위만 되어도

\"조교 앞으로!\"하면서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서비스 하는게

훨씬 경제적임을 계산 빠른 우리들이 아는 상식이 아니었습니까.



한술 더 떠 3급 장애인에 준하는 몸으로, 진통제와 주사를 맞아가며

딱 한번만 더, 다시 한번 만 더, 이번이 마지막...

일요일 오후에 교장선생님이 보여주신 중심이동법의 시범은

총 아홉번이었습니다.



처음엔

\'저 인간이 저 몸으로 몇 번이나 시범을 보일까\'하며

세어 보다가

다섯 번을 넘어 갈 때부터

\'아, 이게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를 악 물고 비명을 참아내며  연신 반복해서 시범을 보이는 그 모습에

저는 그만 질려버렸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눈이 뚫어져라, 그 자세를 머리속에 각인시킬 수 있었습니다.

  
일요일 저녁, 하산하면서

권등학교의 교장선생 이하 모든 선생들은

\'이 시대를 거스르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시대를, 바람을 거스르며 산다는 건

그만큼 외롭게 버틴다는 것일 테지요.

그만큼 아름답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분명

지난 3주동안 우리가  목격한 사람들은

교육사업가가 아닌 교육자 였습니다.

그 점에서 우리 40기들은

우리끼리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지만,

서대문구 냉천동 안산 암장에서 행운을 쟁취한 \'집단\'입니다.


교장 선생께서 회식시간에 제게 총무란 직책을 제의했을때

턱 보면 견적이 이미 나오는 일인데, 당연히 거절했어야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선택일터이지만

오히려 \'고맙습니다\'라며 중책을 받았습니다.


이상이 총무가 되기까지 저의 솔직한 사연이었습니다.


저 뿐 아니라 40기 모두(혹은 대다수)가 저처럼 생각하셨을 줄 압니다.

그래서

행복한 마음을 간만에 만끽하고 있습니다.


일요일 새벽,

자일을 타고 바위를 이리 저리 옮겨 다니시던 교장선생님의

카세트에서는

모리스 앨버트의 \'Feeling\'이 흘러나오더군요.

그 순간, 암벽 등반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했습니다.


언젠가는

이 홈페이지에 혹은 다른 루트를 통해서

암벽 등반가들을 위한

음악들을 선곡해 올려 놓으면 참 좋을 거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는 것은

돈이나 명예와는 무관하지만,

삶의 무게로 힘들 때마다

좋은 진통제가 된다는 걸 이미 느낀 나이입니다.

그래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기에 기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늘어 놓은 것 같아

읽는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남기며

이만 줄입니다.


인수봉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권등 40기 이동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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