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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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41기 류재신 작성일05-06-03 15:24 조회2,656회 댓글0건본문
어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던 예비소집일의 쭈뼛거리던
표정들이 생생하기만 한데 어느덧 졸업을 한지도 두주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정들자 이별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좀 말문이 트이고 어색함이 가실만 하니 졸업을 맞이 하였고
제각기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5주라는 기간은 물리적으로도 길지 않은 시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 줄에 몸을 묶은 자일파티로서 안산암장과 인수봉을
오르내리던 기억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모두들 예전에 소속돼 있던 산악회로 다시 돌아가거나 혹은 새로운
산악회에 들어가 가슴조리며 실전을 맞이하고 계시겠군요.
저 역시 저희 교육을 지원해 주시며 동문 선배의 뜨거운 정을 느끼게
해 주었던 돌양지 산악회에 들어가 첫 바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부박한 삶에 새롭게 주어진 기회를 올곧고 아름답게 경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등반이 모험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등반은 더 이상 모험의 세계가 아닙니다.
워랜 하딩과 로얄 로빈스가 서사시와도 같은 요세미테 등반사를
작성하고 리카르도 캐신이 돌로미테에서 매킨리까지 종횡무진 자신의 족적을
새겨놓았을 당시 등반은 분명 불확실성에 스스로를 던지는 모험의 세계였습니다.
쟝 크라우드 드로이어가 프랑스 자유등반의 계몽자로 나서고 라인홀트 메스너와
예지 쿠쿠츠카가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속공 자유등반과 알파인 스타일의 새로운
전범을 제시할때 까지만 해도 등반이라는 언어에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숭고하고도 원색적인 욕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당대 자유등반의 선두주자였던 볼프강 귈리히가 고소에서의
벽등반에 까지 자유등반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알렉스 로우가 90년대 고난도
알파인 등반의 영역을 개척했을때 까지도 등반이라는 언어에는 현대 문명인의
심연에 숨어있는 야성성을 자극하는 호르몬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국내로 시선을 돌려 보자면 97년(?) 고 최승철 김형진 신상만 3인의 자일파티가
탈레이 사가르에서 그 영웅적인 행로를 마감한 이후로 등반이 추구하던 모험적
요소도 사라졌다고 봅니다.물론 아직도 많은 알피니스트와 클라이머들이 새로운
대상지를 찾아 떠나고 있지만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장비와 스포츠 클라이밍을 통한 기술의 발달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비용만 지불하면 최고 수준의 가이드가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데려다 주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대단히 외람된 말씀이지만 근자의 14좌 등정이나 그랜드슬램 달성이
에피소드나 사족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북한산은 물론이고 설악산등의 암벽 대상지에 새로 길을 낼만한 곳이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곳이 개척되었습니다.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코퍼헤드를 두드려 박으며 아슬아슬하게 가야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장비의 발달은 5mm의 실크랙에도 캠장비를 부드럽게 넣을수 있고 그것은
중력으로 부터 우리를 완벽하게 보호해 줍니다.
결과적으로 위험하게 등반할 이유가 없어진 겁니다.
등반에 스포츠적이고 레저적인 요소가 강화된 지금 목숨 걸고 등반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등반은 이제 철저히 즐기는 무엇이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스포츠적이고 레저적인 요소가 등반의 본래 가치를 훼손한다고
보지 않습니다.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지극히 당연한 변화라고 봅니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꼭 안전하게 등반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늘 못오르면 내일 와서 오르면 되고 내일도 안되면 몇일 쉬었다 다시 오면
되지 않겠습니까.등반은 우리의 즐거운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얼마전에 설악산에 있는\'별을 따는 소년들\'에 아내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비박을 하면서 배낭을 풀어 놓으니 엄청난 짐을 가져 왔더군요.
이게 내삶의 무게라고 생각하니 우울했습니다.
우리들은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고 삽니다.
집착이 많을수록 무거운 삶을 삽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배낭의 무게는 그사람 집착의 무게입니다.
뜯어갈수만 있었다면 화장실 변기라도 뜯어서 짊어지고 왔을지도 모릅니다.
배낭의 무게도 가볍게 하시고 몸의 무게도 가볍게 하셔서
인수봉 빌라길의 동전 두께 만한 홀드를 잡고서도 가볍게
일어설수 있게 되기를 빌겠습니다.
괜히 말이 길어졌습니다.
산이나 저자거리에서 지저분한 웨이브의 긴머리를 만나면
반갑게 맞아 주시겠지요.
권등 41기 여러분의 건승과 안전등반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표정들이 생생하기만 한데 어느덧 졸업을 한지도 두주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정들자 이별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좀 말문이 트이고 어색함이 가실만 하니 졸업을 맞이 하였고
제각기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5주라는 기간은 물리적으로도 길지 않은 시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 줄에 몸을 묶은 자일파티로서 안산암장과 인수봉을
오르내리던 기억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모두들 예전에 소속돼 있던 산악회로 다시 돌아가거나 혹은 새로운
산악회에 들어가 가슴조리며 실전을 맞이하고 계시겠군요.
저 역시 저희 교육을 지원해 주시며 동문 선배의 뜨거운 정을 느끼게
해 주었던 돌양지 산악회에 들어가 첫 바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부박한 삶에 새롭게 주어진 기회를 올곧고 아름답게 경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등반이 모험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등반은 더 이상 모험의 세계가 아닙니다.
워랜 하딩과 로얄 로빈스가 서사시와도 같은 요세미테 등반사를
작성하고 리카르도 캐신이 돌로미테에서 매킨리까지 종횡무진 자신의 족적을
새겨놓았을 당시 등반은 분명 불확실성에 스스로를 던지는 모험의 세계였습니다.
쟝 크라우드 드로이어가 프랑스 자유등반의 계몽자로 나서고 라인홀트 메스너와
예지 쿠쿠츠카가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속공 자유등반과 알파인 스타일의 새로운
전범을 제시할때 까지만 해도 등반이라는 언어에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숭고하고도 원색적인 욕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당대 자유등반의 선두주자였던 볼프강 귈리히가 고소에서의
벽등반에 까지 자유등반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알렉스 로우가 90년대 고난도
알파인 등반의 영역을 개척했을때 까지도 등반이라는 언어에는 현대 문명인의
심연에 숨어있는 야성성을 자극하는 호르몬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국내로 시선을 돌려 보자면 97년(?) 고 최승철 김형진 신상만 3인의 자일파티가
탈레이 사가르에서 그 영웅적인 행로를 마감한 이후로 등반이 추구하던 모험적
요소도 사라졌다고 봅니다.물론 아직도 많은 알피니스트와 클라이머들이 새로운
대상지를 찾아 떠나고 있지만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장비와 스포츠 클라이밍을 통한 기술의 발달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비용만 지불하면 최고 수준의 가이드가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데려다 주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대단히 외람된 말씀이지만 근자의 14좌 등정이나 그랜드슬램 달성이
에피소드나 사족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북한산은 물론이고 설악산등의 암벽 대상지에 새로 길을 낼만한 곳이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곳이 개척되었습니다.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코퍼헤드를 두드려 박으며 아슬아슬하게 가야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장비의 발달은 5mm의 실크랙에도 캠장비를 부드럽게 넣을수 있고 그것은
중력으로 부터 우리를 완벽하게 보호해 줍니다.
결과적으로 위험하게 등반할 이유가 없어진 겁니다.
등반에 스포츠적이고 레저적인 요소가 강화된 지금 목숨 걸고 등반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등반은 이제 철저히 즐기는 무엇이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스포츠적이고 레저적인 요소가 등반의 본래 가치를 훼손한다고
보지 않습니다.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지극히 당연한 변화라고 봅니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꼭 안전하게 등반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늘 못오르면 내일 와서 오르면 되고 내일도 안되면 몇일 쉬었다 다시 오면
되지 않겠습니까.등반은 우리의 즐거운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얼마전에 설악산에 있는\'별을 따는 소년들\'에 아내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비박을 하면서 배낭을 풀어 놓으니 엄청난 짐을 가져 왔더군요.
이게 내삶의 무게라고 생각하니 우울했습니다.
우리들은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고 삽니다.
집착이 많을수록 무거운 삶을 삽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배낭의 무게는 그사람 집착의 무게입니다.
뜯어갈수만 있었다면 화장실 변기라도 뜯어서 짊어지고 왔을지도 모릅니다.
배낭의 무게도 가볍게 하시고 몸의 무게도 가볍게 하셔서
인수봉 빌라길의 동전 두께 만한 홀드를 잡고서도 가볍게
일어설수 있게 되기를 빌겠습니다.
괜히 말이 길어졌습니다.
산이나 저자거리에서 지저분한 웨이브의 긴머리를 만나면
반갑게 맞아 주시겠지요.
권등 41기 여러분의 건승과 안전등반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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