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분에게 외람된 말씀이지만
돌아가시고 나서 찾으면 뭐합니까...

오늘 도봉산 선인봉 사고지점에 오후 늦게 올라 술 한 잔 따라드리고 왔습니다.

내리는 길에 마운틴써비스 직원이 그러더군요.
오늘이 삼우제여서 아침에 사람들이 많이 올라갔다고요.



생전에 고인께서는
너무나 외롭게 그러나 고결하게 꿋꿋하게 사신듯 합니다.
바우가 있으니까 가능했겠지요.


고인은 금전하고는 무관하신듯 수도승처럼 매우 검약한 생활을 유지하셨습니다..
지난 15개월동안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교육생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고....
저와 단둘이서 하던 때도 많았고 많으면 4~5명 최고로 많았을 때가 6~7명이었습니다.

때론 등록을 해놓고도
교육과정이 너무 힘들어 적응을 못하고 나오지 못하시는 교육생들도 많았을거로 추측합니다.
그런 이유로
대장님의 헨펀에 교육생들의 연락처가 내장되어 있다는 것만 알뿐 정확히 몇분이나 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춘 등산학교와는 다르고
내일 인수가겠습니다 하는 교육생의 전화를 받고 바우를 오가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권등 31기 졸업생입니다.
등산학교는 등반시 갖춰야 되는 필수적인 모든 기초지식을 전수하는 곳입니다.

한대장님과의 등반은 실전 위주의 교육이었고요.
수리봉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인수와 선인의 모든 루트를 세세히 꿰고 계셨습니다.
하루 4~5개의 루트를 잡고 어려운 부분만 피치등반으로 반복 교육하는 식이었지요.



한대장님과는 이곳을 졸업후 작년 6월말부터 시작해서 올 9월까지 등반을 같이 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말씀을 빌리자면 한대장 등산대학교 04학번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다음카페 \"권등31기\"를 찾으시면 \'퐁라라\'라는 닉네임으로
대장님과 많게는 주3회, 월12회 등반기록을 나름대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고인께서는 잡다스럽게 남앞에 나서시는 것을 싫어하셨지요.

항상 조용조용 없는듯이 다니셨고요.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등반기록을 남기는것 또한 좋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압니다.




바우를 타는 그분의 모습은 한 마리 고고한 청학의 모습이었드랬습니다.

인수봉 취나드A와 심우길,벗길,빌라,산천지,민남길 등등을 오르는 모습은 바우에서 펼치는 예술 그 자체였습니다.

선인 푸른길과 거미길을 단 5분도 걸리지 않고 나비처럼 가볍게 날으듯이 올라가셨지요.

제가 표범이나 박쥐 등 난이도가 낮은 곳도 가보고 싶다고 말씀드리면
그런 곳은 안간다고 나중에 너 혼자 사람들 데리고 가보면 된다고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간신히 동양길 한번 모시고 간 적은 있네요.


행여나 제가 그리그리를 거꾸로 하였을 때는 \"그렇게 하면 안가지\" 하고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알게모르게 넌지시 모든걸 살피고 계셨습니다.


고인께서는 차라리 등산학교를 나오지 않은 암벽에 대한 의욕만을 갖춘 초보꾼을 원했습니다.
본인의 지식과 노하우만을 그대로 전수받기를 바라셨겠지요.



고인께서는 겨울에는
손정준선생님이 금호동에 운영하는 클라이밍연구소에 출퇴근하셨습니다.

손선생은 90년대를 풍미한 13c를 이룬 탑 스포츠클라이머이지요.
그 선생님의 소개로 실내암장에서 한대장님을 소개받은게 저와의 인연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고인께서 그 연세에 본인을 관리하시는 모습에 항상 놀라워하고 존경했답니다.





체구는 작으셨지만 거인이셨기에...
그러나 너무도 외롭게 가신듯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좋은 곳으로 임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