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의 인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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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근모 작성일05-12-13 16:54 조회3,030회 댓글0건본문
교장 선생님!
이번 인수봉 등반 후 더 아프시지는 않는지 걱정입니다.
눈 덮인 인수봉을 올랐다는 이 경이로운 경험을 하였으니, 게시판에 그 감동을 적어야겠고, 또 이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하는 말투로 써 봅니다.
한 주 전에 계획되었던 인수봉 등반이 엄청난 눈 때문에 취소되었고, 금년에는 틀렸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 겨울에 눈 덮이고, 얼음이 깔려있는데, 그저 한 두 피치만 오르는 흉내를 내다가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에 주변의 많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새벽 7시에 도선사 주차장으로 갔다. 교육생 10명과 교장선생님, 강사님 4명, 그리고 동문팀인 ‘바우사랑’ 선배님들과 모여서 인수 대피소를 지나 인수봉 대슬랩으로 올라갔다.
주차장에서의 온도가 영하 9도였으니까, 이곳은 영하 10도 이상일 것 같은데, 바람이 없어서 추위는 그런대로 견딜 만 했고, 바위는 역시 곳곳에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었다. 등반가들이 가장 많이 모여서 항상 정체현상이 생긴다는 인수봉이건만 오늘은 우리팀 외에는 아무도 없다. 인수봉은 커녕 위문으로 오르는 등산객도 거의 없다. 인수대피소 뒤 야영장에서 눈 속에 비박을 하는 사람들이 몇명 있었지만, 그들도 끝내 인수봉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선등을 나선 ‘바우사랑’ 조병현 선배님이 계속 미끄러진다. 인수봉의 남쪽은 눈이 다 녹았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동쪽이라서 일주일 전에 온 눈이 아직 다 녹지 않았다. 크랙을 타고 얼마쯤 오르고, 크랙이 끝나는 지점에서 슬랩으로 발을 딛고 올라야 하는데, 그 순간 계속 미끄러진다. 크랙에서는 그래도 1m에 하나씩 프랜드를 끼고 올라서 추락이 길지는 않았으나, 슬랩으로 올라서는 순간에는 3~4 미터는 추락을 한다. 계속되는 추락에 아래에서 보고 있는 우리들은 잔뜩 긴장을 한다. 보통 때는 5분이면 통과할 수 있는 슬랩을 30분 이상이나 고생하며 오르는 선등자의 모습에서 이미 오늘의 모험이 여간만하지 않으리라는 전조가 나타나고 있었건만…
인수A 루트는 그늘이 져서 얼음이 더 많단다.
첫 피치는 긴 크랙을 오르다가 중간에서 슬랩으로 올라야 한다. 인수A루트에 동참하신 교장 선생님이 “오늘 너무 추우니까 암벽화를 신지 말고 릿지화로 오르라”고 하신다.
이렇게 영하 10도 이상일 때는 암벽화 창도 딱딱하게 굳어서 바위에 잘 붙지를 않는단다. 나중에 보니 B루트에서는 암벽화로 갈아 신었다는데, 발이 얼어서 떨어질 것 같았단다. ‘동상이나 걸리지들 않았으면 좋겠는데… 2주 전에 갈빗뼈 3대나 부러져 입원해 있다가 병원에서 각서쓰고 외출해서 왔다는 권교장님이 고맙기 그지없다.
제대로 자신의 몸도 가누지를 못하면서 말이다.우리를 위한 대단한 희생이다.
이 곳에서 오르면 중간에 오아시스라는 장소가 나온단다. 농구장만하다는 소리를 듣고 올라가서 보니, 그저 두 평 남짓한 곳인데 그나마도 눈이 쌓여 있어서 미끄러질까봐 불안하다. 그러나, 등반가들이 왜 이곳을 농구장만하다고 느끼는지를 그 다음 피치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걸린다고 한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30 분. 시장기가 든다. 새벽 4시30분에 라면 한 그릇 먹은 것 뿐이니. 버터 크래커 한 조각과 보온병의 더운 물로 추위를 달래보고…
슬랩 등반 시에는 바위의 오돌 도돌한 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잡아야 하므로 장갑을 끼어서는 안되지만, 너무 추워서 그냥 장갑을 끼고 올랐다. 장갑 안쪽에는 미끄럼 방지 고무가 붙어있지만, 경사가 심한 슬랩에서는 벗어야 한다. 두 세번 추락하니 가운데 손가락 부분에 구멍이 생기고, 그 곳의 손가락은 이미 마비가 되어서 감각이 없다. 첫 피치를 올라가니, 확보지점에 겨우 세 명이 매달릴 수 있다. 그것도 발가락 끝만 걸치고 뒷사람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20~30분을 매달려 있으려니, 발가락에 쥐가 난다. 이 곳에서 쥐가 나면 큰일인데 … 그런데 다음 피치에서는 더욱 비좁다. 한발만 안쪽으로 걸치고 한 발은 그냥 경사진 바위에 붙이고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런 자세에서는 허리가 아파서 오래 못 있는데. 아까 그 오아시스가 농구장이 아니라 축구장처럼 느껴진다.
다음 피치는 트래버스. 경사 심한 바위를 옆으로 가야 한다. 아래로는 몇십 미터 되는 낭떠러지다. 아무리 선등자가 위에서 걸어놓은 자일에 몸을 묶었다고는 하지만, 아래를 내려다 보면 X구멍이 오그라 붙는다. 트래버스 다음에는 직상 크랙을 두 손으로 잡고 올라야 한다. 장갑을 끼고는 그 조그만 틈에 손가락을 걸 수가 없다. 그래서 장갑을 벗었다. 손이 얼어서 아무 감각이 없다. 그러나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며 가까스로 올랐다. 확보지점에서 이제 한숨을 쉬며 우선 장갑부터 찾아서 끼려는데, 아뿔싸! 그만 장갑 한 짝을 떨구고 말았으니. 그 때부터 내 왼 손은 그 찬 바람을 그냥 견뎌야 했는데. 이틀이 지난 지금도 왼손은 저리고 감각이 별로 없다. 동상이 걸린 것 같지는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세번째 등반을 마치니 어둑어둑해진다. 시계를 보니 5시30분. 강사님들에 격려가 들려온다 이 강사님이 속삭인다.
“제발 조금만 더 힘내시라고 지체할수록 힘들다고”
“으잉?”
정신이 번쩍 난다.
여기서 또 올라간단다. 그런데 이젠 기진맥진. 거기다 이 마지막 바위는 경사가 이제까지의 바위와는 상대도 안된다. 아무리 오르려해도 두 발짝도 못 떼겠다. 벙어리 크랙에 발을 넣고 비틀라는데 지난번 다친 왼쪽 발목은 옆으로 꺽을 수가 없다. 재밍을 하지 못하면 슬랩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데, 맨질맨질한 바위에 살짝 얼음까지 있으니 발을 디딜 곳이 없다. 계속된 추락 그리고 또 추락… 조병현 선배님은 여기를 어떻게 올라갔단 말인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위에서도 기다리다 지쳤는지 끌어 올려준다. 그러나 그것도 내가 발을 조금이라도 움직여서 올라서야 끌어올릴 수가 있다. 울둥살둥 간신히 올랐는데… 여기서부터는 걸어가도 된단다. 후유~
그런데 앞서 갔던 조병현 선배님(선등자)이 돌아왔다. 마지막 바위인 참기름 바위를 도저히 못 올라가겠단다. 원래 잘 미끄러지는 바위라 참기를 바위라 불렀다는데, 지금 눈이 덮여 있고, 그 밑에는 얼음이 있어서 못 간단다. B팀에서도 연락이 왔다. 그 팀도 악전고투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어찌해야 하나요? 교장 선생님~!”
“그 쪽(인수B) 리더가 스스로 판단해서 도저히 불가능하면 탈출(그지점에서 하강)하라!”
“그리고 양 선생님은 하강하세요! 우리도 여기서 하강합니다.”
아니, 어떻게 해서 올라왔는데^^~.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이젠 걱정이 앞선다. 여기서 탈출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더 고생스러운 것은 아닌가? 재빠른 동작으로 하강을 했는데, 이게 왠 일!.
인수B팀에서 연락이 다시 왔다. B팀이 참기름 바위를 올라갔단다. 그러면 자일만 깔면 되니 A 팀도 다시 올라가란다.
“나는 이젠 못가!”
“그럼 양선생님은 혼자 여기서 잘 거예요?”
“으잉?”
“쥬마 없어요?”
‘네~’ 나는 쥬마가 없다. 아무 소리도 못하고 눈치만 본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학교 졸업하면 우선 쥬마부터 구입하던데, 그것도 안 사고 뭐했어요?”
(참고로 나는 평일/암벽반 47기이므로 교육을 이수하여 졸업은 했음. 인수봉 등반은 일요/암벽반 47기와 함께...)
‘글쎄,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지 알았남~^^’ 결국 이순주 강사님의 쥬마를 빌렸다. 오른손으로 자일을 잡고 왼손으로 쥬마를 밀고. 그래도 힘들다. 그나마 쥬마가 있어서 몸은 줄에 대롱 대롱 매달린다.
“아~ 내가 이런 짓을 왜 하나~”
머리 가득 후회 뿐이다.
그래도 이게 마지막이려니 하고 죽을 힘을 다해서 올랐는데,
세상에!
B팀이 참기름 바위를 올라간 것이 아니라, B팀도 탈출을 안할테니, A팀이 참기름 바위를 올라갔으면 줄을 내려달라는 얘기였단다. 참기름 바위 아래 모여서 모두 난감한 표정이다. 그리 높지 않은 바위건만 이 얼음판을 올라갈 재주가 없다. 이순주 강사님이 도전을 해보겠단다. 그러나 몇 걸음 못가서 주르르~. 바위사랑’ 선배님중에 베테랑 한분이 도전해 봤지만 주르르~.
드디어 교장 선생님이 앞으로 나선다.
갈비뼈가 부러진 사람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그것도 모든 등반을 진두지휘하면서
정말 경외로운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하는 방법도 여러분들이 배워야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교육자의 자세를 놓치지 않는다.
“인간 사다리를 만듭시다.”
신체 튼튼한 사람이 바위에 배 깔고 엎드리고, 그 위로 한 사람이 어깨를 밟고 엎드리고, 또~.이렇게 대 여섯 명이 엎드려서 사다리를 만든 다음, 제일 가벼운 이순주 강사님이 마지막에 올라갔다. 그러나 그 순간, 무게인지 중심인지를 견디지 못하고 맨 밑의 사람이 배가 바위에서 떠오른다. 나는 발목이 부실하여 행여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까 밑에서 추락자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맨 밑의 사람을 뒤에서 밀어주었으나,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오~ 세상에, 뒤가 그리 넓지도 않은 좁은 공간에서 눈에 미끄러지면 저 아래로 굴러 떨어질텐데, 무조건 떨어지는 사람들의 다리를 붙잡고 바위에 엎드렸다.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
작전을 다시 짠다. 맨 밑의 사람이 힘에 부쳐서 무너졌으니 두 사람이 받쳐 보잖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도하기로 했다. 남아있는 사람들도 밑에 있는 사람들을 밀어 주고~ 날씬한 이순주 강사님이 드디어 경사를 넘어서 밋밋한 얼음 위로 올라섰다. 다시 떨어지면 안되는데~ 그런데 기적같이 그녀가 해낸 것이었다.
“완료!”
소리에 모두가 환호한다.
인수봉 정상을 드디어 올랐다. 그냥 인수봉 정상이 아니라, 눈과 얼음이 덮인 12월11일 저녁 8시에. 서울의 야경이 너무 아름답다. 불야성을 이룬 가로등과 네온사인들, 그 사이를 명멸하는 불빛들이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기어간다. 코 앞에서 검은 자태로 서 있는 백운대와 만경대가 전혀 새로운 모습이다. 아래에서 볼 때는 별로 눈에 띄지도 않던 염초봉의 스카이 라인도 여기에서는 아주 매혹적이다.
그런데 배가 너무 고프다. 보온병의 물은 떨어진지 오래고, 프라스틱 물병은 꽝꽝 얼어서 터질 것 같으니, 먹을 것이라고는 캬라멜 몇 조각이다. 기념사진을 찍고 하강 장소로 옮기는데, 바람이 너무 거세다. 숨은벽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살을 에일 듯 하다.
“하강할때 아무리 손이 시려워도 제동손은 절대 놓으면 안됩니다.”
“몇번씩이나 다짐하는 강사님들의 목소리가 바람 소리에 섞여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데, 나는 장갑이 한짝밖에 없다. 그리고 랜턴도 안 가져왔다.(왜 이런 개인적 실수를...)
‘그래도 달빛이 있고 오른손 장갑이 남아 있으니 다행이지.
혼자 자위를 하며 하강지점에 섰다.
“하강!”
용감하게 소리지르는 순간, 한상연 강사님의 목소리가 귀를 찌른다.
“잠깐만요!”
“하강기를 몸에 안끼웠잖아요!”
이렇게 추울때는 기억력이 몇십 % 떨어진다고 했던가? 그래도 그렇지. 하강기를 몸에 끼우지도 않고 확보줄을 풀려고 하다니. 으~으~ 떨린다.(역시 강사님이다.)
내려가다 보니, 하강줄 가닥들이 바람에 엉켜 있다. 이십여년 전 3월인가 4월에 여기서 자일이 엉켜서 대학생 십여 명이 얼어죽은 기사가 떠오른다. 감각이 없는 왼손도 이런 상황에서는 끽 소리도 못하고 자일을 움켜쥐고 있다.
“왼쪽으로! 왼쪽으로!”
어디선가 외치는 소리가 바람 소리에 섞여서 간간히 들려온다. 먼저 내려간 사람들이 왼쪽으로 가라는 것이다. 오른쪽은 자일이 짧아서 밑에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60m를 하강하고 뒷 사람까지 기다리니 10시. 배는 고프고 김밥을 꺼내보니 얼음덩어리다. 달빛과 뒷사람의 랜턴 빛을 의지하여 내려오는 길이 왜 그리 멀고 가파른가.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12시45분. 그래도 우이동에 내려오니 해장국 집이 문들을 열고 있어서 추운 배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 더 얘기하면, 식당에서부터 허벅지에 왼쪽, 오른쪽 번갈아 쥐가 나더니,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여 후진 기어를 넣는 순간 굳어버리더니 꼼짝을 못하겠더라. 새벽 3시이니 아무도 주차장에 들어오지도 않고, 차를 내팽개치고 주차장 바닥에 뒹구르기를 10여분, 간신히 일어나서 주차를 하고 올라왔다.
지금? 지금은 허벅지는 괜찮은데, 오른손 중지와 왼손 다섯 손가락 끝이 아직도 얼얼하고 저리다. 정말 기막힌 경험을 한 것 같다. 내 생애 다시 12월에 눈 덮인 인수봉을 오를 수 있을까? 교장선생님도 교육생을 데리고서 얼음속의 눈덥힌 인수봉을 오른 것은 처음이라하신다.
교장선생님, 이순주 강사님을 비롯한 모든 강사님, 동문 산악회인 바우사랑 그리고 함께한 선배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잊지 못할 추억이었습니다. 영원히.....
이번 인수봉 등반 후 더 아프시지는 않는지 걱정입니다.
눈 덮인 인수봉을 올랐다는 이 경이로운 경험을 하였으니, 게시판에 그 감동을 적어야겠고, 또 이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하는 말투로 써 봅니다.
한 주 전에 계획되었던 인수봉 등반이 엄청난 눈 때문에 취소되었고, 금년에는 틀렸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 겨울에 눈 덮이고, 얼음이 깔려있는데, 그저 한 두 피치만 오르는 흉내를 내다가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에 주변의 많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새벽 7시에 도선사 주차장으로 갔다. 교육생 10명과 교장선생님, 강사님 4명, 그리고 동문팀인 ‘바우사랑’ 선배님들과 모여서 인수 대피소를 지나 인수봉 대슬랩으로 올라갔다.
주차장에서의 온도가 영하 9도였으니까, 이곳은 영하 10도 이상일 것 같은데, 바람이 없어서 추위는 그런대로 견딜 만 했고, 바위는 역시 곳곳에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었다. 등반가들이 가장 많이 모여서 항상 정체현상이 생긴다는 인수봉이건만 오늘은 우리팀 외에는 아무도 없다. 인수봉은 커녕 위문으로 오르는 등산객도 거의 없다. 인수대피소 뒤 야영장에서 눈 속에 비박을 하는 사람들이 몇명 있었지만, 그들도 끝내 인수봉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선등을 나선 ‘바우사랑’ 조병현 선배님이 계속 미끄러진다. 인수봉의 남쪽은 눈이 다 녹았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동쪽이라서 일주일 전에 온 눈이 아직 다 녹지 않았다. 크랙을 타고 얼마쯤 오르고, 크랙이 끝나는 지점에서 슬랩으로 발을 딛고 올라야 하는데, 그 순간 계속 미끄러진다. 크랙에서는 그래도 1m에 하나씩 프랜드를 끼고 올라서 추락이 길지는 않았으나, 슬랩으로 올라서는 순간에는 3~4 미터는 추락을 한다. 계속되는 추락에 아래에서 보고 있는 우리들은 잔뜩 긴장을 한다. 보통 때는 5분이면 통과할 수 있는 슬랩을 30분 이상이나 고생하며 오르는 선등자의 모습에서 이미 오늘의 모험이 여간만하지 않으리라는 전조가 나타나고 있었건만…
인수A 루트는 그늘이 져서 얼음이 더 많단다.
첫 피치는 긴 크랙을 오르다가 중간에서 슬랩으로 올라야 한다. 인수A루트에 동참하신 교장 선생님이 “오늘 너무 추우니까 암벽화를 신지 말고 릿지화로 오르라”고 하신다.
이렇게 영하 10도 이상일 때는 암벽화 창도 딱딱하게 굳어서 바위에 잘 붙지를 않는단다. 나중에 보니 B루트에서는 암벽화로 갈아 신었다는데, 발이 얼어서 떨어질 것 같았단다. ‘동상이나 걸리지들 않았으면 좋겠는데… 2주 전에 갈빗뼈 3대나 부러져 입원해 있다가 병원에서 각서쓰고 외출해서 왔다는 권교장님이 고맙기 그지없다.
제대로 자신의 몸도 가누지를 못하면서 말이다.우리를 위한 대단한 희생이다.
이 곳에서 오르면 중간에 오아시스라는 장소가 나온단다. 농구장만하다는 소리를 듣고 올라가서 보니, 그저 두 평 남짓한 곳인데 그나마도 눈이 쌓여 있어서 미끄러질까봐 불안하다. 그러나, 등반가들이 왜 이곳을 농구장만하다고 느끼는지를 그 다음 피치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걸린다고 한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30 분. 시장기가 든다. 새벽 4시30분에 라면 한 그릇 먹은 것 뿐이니. 버터 크래커 한 조각과 보온병의 더운 물로 추위를 달래보고…
슬랩 등반 시에는 바위의 오돌 도돌한 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잡아야 하므로 장갑을 끼어서는 안되지만, 너무 추워서 그냥 장갑을 끼고 올랐다. 장갑 안쪽에는 미끄럼 방지 고무가 붙어있지만, 경사가 심한 슬랩에서는 벗어야 한다. 두 세번 추락하니 가운데 손가락 부분에 구멍이 생기고, 그 곳의 손가락은 이미 마비가 되어서 감각이 없다. 첫 피치를 올라가니, 확보지점에 겨우 세 명이 매달릴 수 있다. 그것도 발가락 끝만 걸치고 뒷사람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20~30분을 매달려 있으려니, 발가락에 쥐가 난다. 이 곳에서 쥐가 나면 큰일인데 … 그런데 다음 피치에서는 더욱 비좁다. 한발만 안쪽으로 걸치고 한 발은 그냥 경사진 바위에 붙이고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런 자세에서는 허리가 아파서 오래 못 있는데. 아까 그 오아시스가 농구장이 아니라 축구장처럼 느껴진다.
다음 피치는 트래버스. 경사 심한 바위를 옆으로 가야 한다. 아래로는 몇십 미터 되는 낭떠러지다. 아무리 선등자가 위에서 걸어놓은 자일에 몸을 묶었다고는 하지만, 아래를 내려다 보면 X구멍이 오그라 붙는다. 트래버스 다음에는 직상 크랙을 두 손으로 잡고 올라야 한다. 장갑을 끼고는 그 조그만 틈에 손가락을 걸 수가 없다. 그래서 장갑을 벗었다. 손이 얼어서 아무 감각이 없다. 그러나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며 가까스로 올랐다. 확보지점에서 이제 한숨을 쉬며 우선 장갑부터 찾아서 끼려는데, 아뿔싸! 그만 장갑 한 짝을 떨구고 말았으니. 그 때부터 내 왼 손은 그 찬 바람을 그냥 견뎌야 했는데. 이틀이 지난 지금도 왼손은 저리고 감각이 별로 없다. 동상이 걸린 것 같지는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세번째 등반을 마치니 어둑어둑해진다. 시계를 보니 5시30분. 강사님들에 격려가 들려온다 이 강사님이 속삭인다.
“제발 조금만 더 힘내시라고 지체할수록 힘들다고”
“으잉?”
정신이 번쩍 난다.
여기서 또 올라간단다. 그런데 이젠 기진맥진. 거기다 이 마지막 바위는 경사가 이제까지의 바위와는 상대도 안된다. 아무리 오르려해도 두 발짝도 못 떼겠다. 벙어리 크랙에 발을 넣고 비틀라는데 지난번 다친 왼쪽 발목은 옆으로 꺽을 수가 없다. 재밍을 하지 못하면 슬랩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데, 맨질맨질한 바위에 살짝 얼음까지 있으니 발을 디딜 곳이 없다. 계속된 추락 그리고 또 추락… 조병현 선배님은 여기를 어떻게 올라갔단 말인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위에서도 기다리다 지쳤는지 끌어 올려준다. 그러나 그것도 내가 발을 조금이라도 움직여서 올라서야 끌어올릴 수가 있다. 울둥살둥 간신히 올랐는데… 여기서부터는 걸어가도 된단다. 후유~
그런데 앞서 갔던 조병현 선배님(선등자)이 돌아왔다. 마지막 바위인 참기름 바위를 도저히 못 올라가겠단다. 원래 잘 미끄러지는 바위라 참기를 바위라 불렀다는데, 지금 눈이 덮여 있고, 그 밑에는 얼음이 있어서 못 간단다. B팀에서도 연락이 왔다. 그 팀도 악전고투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어찌해야 하나요? 교장 선생님~!”
“그 쪽(인수B) 리더가 스스로 판단해서 도저히 불가능하면 탈출(그지점에서 하강)하라!”
“그리고 양 선생님은 하강하세요! 우리도 여기서 하강합니다.”
아니, 어떻게 해서 올라왔는데^^~.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이젠 걱정이 앞선다. 여기서 탈출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더 고생스러운 것은 아닌가? 재빠른 동작으로 하강을 했는데, 이게 왠 일!.
인수B팀에서 연락이 다시 왔다. B팀이 참기름 바위를 올라갔단다. 그러면 자일만 깔면 되니 A 팀도 다시 올라가란다.
“나는 이젠 못가!”
“그럼 양선생님은 혼자 여기서 잘 거예요?”
“으잉?”
“쥬마 없어요?”
‘네~’ 나는 쥬마가 없다. 아무 소리도 못하고 눈치만 본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학교 졸업하면 우선 쥬마부터 구입하던데, 그것도 안 사고 뭐했어요?”
(참고로 나는 평일/암벽반 47기이므로 교육을 이수하여 졸업은 했음. 인수봉 등반은 일요/암벽반 47기와 함께...)
‘글쎄,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지 알았남~^^’ 결국 이순주 강사님의 쥬마를 빌렸다. 오른손으로 자일을 잡고 왼손으로 쥬마를 밀고. 그래도 힘들다. 그나마 쥬마가 있어서 몸은 줄에 대롱 대롱 매달린다.
“아~ 내가 이런 짓을 왜 하나~”
머리 가득 후회 뿐이다.
그래도 이게 마지막이려니 하고 죽을 힘을 다해서 올랐는데,
세상에!
B팀이 참기름 바위를 올라간 것이 아니라, B팀도 탈출을 안할테니, A팀이 참기름 바위를 올라갔으면 줄을 내려달라는 얘기였단다. 참기름 바위 아래 모여서 모두 난감한 표정이다. 그리 높지 않은 바위건만 이 얼음판을 올라갈 재주가 없다. 이순주 강사님이 도전을 해보겠단다. 그러나 몇 걸음 못가서 주르르~. 바위사랑’ 선배님중에 베테랑 한분이 도전해 봤지만 주르르~.
드디어 교장 선생님이 앞으로 나선다.
갈비뼈가 부러진 사람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그것도 모든 등반을 진두지휘하면서
정말 경외로운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하는 방법도 여러분들이 배워야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교육자의 자세를 놓치지 않는다.
“인간 사다리를 만듭시다.”
신체 튼튼한 사람이 바위에 배 깔고 엎드리고, 그 위로 한 사람이 어깨를 밟고 엎드리고, 또~.이렇게 대 여섯 명이 엎드려서 사다리를 만든 다음, 제일 가벼운 이순주 강사님이 마지막에 올라갔다. 그러나 그 순간, 무게인지 중심인지를 견디지 못하고 맨 밑의 사람이 배가 바위에서 떠오른다. 나는 발목이 부실하여 행여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까 밑에서 추락자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맨 밑의 사람을 뒤에서 밀어주었으나,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오~ 세상에, 뒤가 그리 넓지도 않은 좁은 공간에서 눈에 미끄러지면 저 아래로 굴러 떨어질텐데, 무조건 떨어지는 사람들의 다리를 붙잡고 바위에 엎드렸다.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
작전을 다시 짠다. 맨 밑의 사람이 힘에 부쳐서 무너졌으니 두 사람이 받쳐 보잖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도하기로 했다. 남아있는 사람들도 밑에 있는 사람들을 밀어 주고~ 날씬한 이순주 강사님이 드디어 경사를 넘어서 밋밋한 얼음 위로 올라섰다. 다시 떨어지면 안되는데~ 그런데 기적같이 그녀가 해낸 것이었다.
“완료!”
소리에 모두가 환호한다.
인수봉 정상을 드디어 올랐다. 그냥 인수봉 정상이 아니라, 눈과 얼음이 덮인 12월11일 저녁 8시에. 서울의 야경이 너무 아름답다. 불야성을 이룬 가로등과 네온사인들, 그 사이를 명멸하는 불빛들이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기어간다. 코 앞에서 검은 자태로 서 있는 백운대와 만경대가 전혀 새로운 모습이다. 아래에서 볼 때는 별로 눈에 띄지도 않던 염초봉의 스카이 라인도 여기에서는 아주 매혹적이다.
그런데 배가 너무 고프다. 보온병의 물은 떨어진지 오래고, 프라스틱 물병은 꽝꽝 얼어서 터질 것 같으니, 먹을 것이라고는 캬라멜 몇 조각이다. 기념사진을 찍고 하강 장소로 옮기는데, 바람이 너무 거세다. 숨은벽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살을 에일 듯 하다.
“하강할때 아무리 손이 시려워도 제동손은 절대 놓으면 안됩니다.”
“몇번씩이나 다짐하는 강사님들의 목소리가 바람 소리에 섞여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데, 나는 장갑이 한짝밖에 없다. 그리고 랜턴도 안 가져왔다.(왜 이런 개인적 실수를...)
‘그래도 달빛이 있고 오른손 장갑이 남아 있으니 다행이지.
혼자 자위를 하며 하강지점에 섰다.
“하강!”
용감하게 소리지르는 순간, 한상연 강사님의 목소리가 귀를 찌른다.
“잠깐만요!”
“하강기를 몸에 안끼웠잖아요!”
이렇게 추울때는 기억력이 몇십 % 떨어진다고 했던가? 그래도 그렇지. 하강기를 몸에 끼우지도 않고 확보줄을 풀려고 하다니. 으~으~ 떨린다.(역시 강사님이다.)
내려가다 보니, 하강줄 가닥들이 바람에 엉켜 있다. 이십여년 전 3월인가 4월에 여기서 자일이 엉켜서 대학생 십여 명이 얼어죽은 기사가 떠오른다. 감각이 없는 왼손도 이런 상황에서는 끽 소리도 못하고 자일을 움켜쥐고 있다.
“왼쪽으로! 왼쪽으로!”
어디선가 외치는 소리가 바람 소리에 섞여서 간간히 들려온다. 먼저 내려간 사람들이 왼쪽으로 가라는 것이다. 오른쪽은 자일이 짧아서 밑에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60m를 하강하고 뒷 사람까지 기다리니 10시. 배는 고프고 김밥을 꺼내보니 얼음덩어리다. 달빛과 뒷사람의 랜턴 빛을 의지하여 내려오는 길이 왜 그리 멀고 가파른가.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12시45분. 그래도 우이동에 내려오니 해장국 집이 문들을 열고 있어서 추운 배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 더 얘기하면, 식당에서부터 허벅지에 왼쪽, 오른쪽 번갈아 쥐가 나더니,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여 후진 기어를 넣는 순간 굳어버리더니 꼼짝을 못하겠더라. 새벽 3시이니 아무도 주차장에 들어오지도 않고, 차를 내팽개치고 주차장 바닥에 뒹구르기를 10여분, 간신히 일어나서 주차를 하고 올라왔다.
지금? 지금은 허벅지는 괜찮은데, 오른손 중지와 왼손 다섯 손가락 끝이 아직도 얼얼하고 저리다. 정말 기막힌 경험을 한 것 같다. 내 생애 다시 12월에 눈 덮인 인수봉을 오를 수 있을까? 교장선생님도 교육생을 데리고서 얼음속의 눈덥힌 인수봉을 오른 것은 처음이라하신다.
교장선생님, 이순주 강사님을 비롯한 모든 강사님, 동문 산악회인 바우사랑 그리고 함께한 선배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잊지 못할 추억이었습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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