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봉 이야기 2 (68기를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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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동욱 작성일08-07-09 02:49 조회2,554회 댓글0건본문
이번 일요일 오전 10시쯤
숨을 고르며
준슬랩에 도착하면 여러분들은
덜 덜 떨리는 손을 진정하려 애쓰면서 암벽화를 갈아신고 있을 겁니다.
저도 첨에 그랬으니까요.
선등자의 뒤를 이어
중간팔자매듭을 비너에 걸고 출발하는 순간
여러분들은
암벽화로 딛는 화강암 슬랩이
학교 암장의 그것보다 훨씬 편하게 다가온다는 느낌을 가질 겁니다.
게다가 루트에 따라서는
흡사 여러분들을 위해
바위가 스탠스를 만들어 둔 것처럼 묘하게 엠보싱이 된 곳도
여기 저기 있습니다.
때로는
발 하나 걸칠 곳이 없는 맨질한 경사면인데
마치
쇠고기 심줄처럼 흰 띠가
바위속을 가로지르고 있어
발끝을 걸치기 수월한 곳도 만날 겁니다.
\'밴드\'라고 하지요.
그렇게 첫 피치가 끝나는 곳이
유명한 \'오아시스\'입니다.
대부분은 인수 암벽의 출발점을
\'오아시스\'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이 봉우리는 20세기 이전의 등반기록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1929년 9월, 경성 주재 총영사관 부영사로 근무하던 영국인 외교관 \'클리프 휴 아처\'가
정식 초등했다는 기록이 지금부터 딱 10년전인 1997년 영국산악회에서 발굴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클리프 아처가 한국인 임무(林茂), 일본인 이야마다쓰오(飯山達雄)등과 함께
1926년 5월에 초등했다는 것이 정설이었지요. 물론 이 주장은 1994년에 작고한
일본인 이야마다쓰오(飯山達雄)씨에 의해 한국 산악계에 알려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망한 지 3년 뒤에 영국 산악회에서 발굴된 클리프 아처의 등반 기록에 따르면 한국인의 이름은 물론 이야마다쓰오(飯山達雄)의 이름도 없습니다.
게다가 초등 연월이 1926년 5월이 아닌 1929년 9월인 겁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아처의 증언입니다.
그는 1919년부터 1934년까지 한국과 일본 양 국을 오가며 근무하고 있었는데
인수봉을 처음 본 때는 1922년이라고 합니다.
1929년 여름, 아처가 인수봉을 오르기 위한 루트 정찰차 백운대를 올랐는데
그 때 \'인수봉에 누군가가 올라가 있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에 남겨 놓았다는 겁니다.
그 해 9월 아처는 영국인 ER 페이시, 일본인 야카나마씨와 함께 등정했는 데 자세한 루트 설명은 제가 구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자료를 좀 더 찾아 보니 아처의 루트로 거의 확증된 곳이 발견됐습니다.
우리가 오르는 슬랩 루트는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고 인수 북면의 크랙을 따라 오르다 일명 \'고독길\'루트와 합류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왜 이런 식이냐면 아처가 그림을 자세히 그려 설명한 게 아니라 기억에 의존한 글로만 남겼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고독길\' 루트에 동굴이 하나 있는 데 당시 아처도 이 동굴을 발견했다고 기록한 겁니다. 그러니 틀림없이 \'고독길\' 중간 쯤에서 영자길까지 오른 거지요.
당시 루트를 답사해 본 사람들은 크랙 중간에 약 5미터 정도 되는 슬랩을 만났는데 과연 아처가 이 슬랩을 올랐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때 함께 답사했던 분이 이런 설명을 합니다.
\'슬랩은 엄두도 못내고, 4-5미터 되는 장대가 당시 암벽등반 장비중 하나였지. 끝에 갈고리 모양이 달려 있어서 그걸 슬랩 위 어디 쯤 걸치고 올랐을 거야\'
또 다른 방법은 \'전설의 47기\'가 교장 선생님의 지휘하에 얼음으로 뒤덮인 참기름 바위를 올랐던 것처럼 인간 사다리 방식이 있었습니다. 3-4미터 되는 슬랩은 당시엔 등반 팀이 무등을 태워 선등자를 올려주었다네요.
이 정도니 우리가 슬랩 등반을 제대로 배운 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우린 최첨단의 등반법을 배우고 있는 거죠)
한편, 루트를 개척한 것과 초등한 것은 동일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우리가 자주 접근하는 인수 A, B 루트는 그보다 한참후인 1935년(인수 B), 1936년(인수 A)에 개척되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클라이머 써클 \'백령회\'의 김정태 씨가 인수 B를, 한국 산악회 박순만씨가 인수 A를 개척했다고 합니다.
그 후 인수봉의 암벽 루트는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우후죽순처럼 개척되었고
현재 총 82개 루트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를 루트엔 이 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대선배님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오른다면
좀 더 수월하게 오르지 않을까요?
(계속)
숨을 고르며
준슬랩에 도착하면 여러분들은
덜 덜 떨리는 손을 진정하려 애쓰면서 암벽화를 갈아신고 있을 겁니다.
저도 첨에 그랬으니까요.
선등자의 뒤를 이어
중간팔자매듭을 비너에 걸고 출발하는 순간
여러분들은
암벽화로 딛는 화강암 슬랩이
학교 암장의 그것보다 훨씬 편하게 다가온다는 느낌을 가질 겁니다.
게다가 루트에 따라서는
흡사 여러분들을 위해
바위가 스탠스를 만들어 둔 것처럼 묘하게 엠보싱이 된 곳도
여기 저기 있습니다.
때로는
발 하나 걸칠 곳이 없는 맨질한 경사면인데
마치
쇠고기 심줄처럼 흰 띠가
바위속을 가로지르고 있어
발끝을 걸치기 수월한 곳도 만날 겁니다.
\'밴드\'라고 하지요.
그렇게 첫 피치가 끝나는 곳이
유명한 \'오아시스\'입니다.
대부분은 인수 암벽의 출발점을
\'오아시스\'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이 봉우리는 20세기 이전의 등반기록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1929년 9월, 경성 주재 총영사관 부영사로 근무하던 영국인 외교관 \'클리프 휴 아처\'가
정식 초등했다는 기록이 지금부터 딱 10년전인 1997년 영국산악회에서 발굴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클리프 아처가 한국인 임무(林茂), 일본인 이야마다쓰오(飯山達雄)등과 함께
1926년 5월에 초등했다는 것이 정설이었지요. 물론 이 주장은 1994년에 작고한
일본인 이야마다쓰오(飯山達雄)씨에 의해 한국 산악계에 알려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망한 지 3년 뒤에 영국 산악회에서 발굴된 클리프 아처의 등반 기록에 따르면 한국인의 이름은 물론 이야마다쓰오(飯山達雄)의 이름도 없습니다.
게다가 초등 연월이 1926년 5월이 아닌 1929년 9월인 겁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아처의 증언입니다.
그는 1919년부터 1934년까지 한국과 일본 양 국을 오가며 근무하고 있었는데
인수봉을 처음 본 때는 1922년이라고 합니다.
1929년 여름, 아처가 인수봉을 오르기 위한 루트 정찰차 백운대를 올랐는데
그 때 \'인수봉에 누군가가 올라가 있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에 남겨 놓았다는 겁니다.
그 해 9월 아처는 영국인 ER 페이시, 일본인 야카나마씨와 함께 등정했는 데 자세한 루트 설명은 제가 구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자료를 좀 더 찾아 보니 아처의 루트로 거의 확증된 곳이 발견됐습니다.
우리가 오르는 슬랩 루트는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고 인수 북면의 크랙을 따라 오르다 일명 \'고독길\'루트와 합류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왜 이런 식이냐면 아처가 그림을 자세히 그려 설명한 게 아니라 기억에 의존한 글로만 남겼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고독길\' 루트에 동굴이 하나 있는 데 당시 아처도 이 동굴을 발견했다고 기록한 겁니다. 그러니 틀림없이 \'고독길\' 중간 쯤에서 영자길까지 오른 거지요.
당시 루트를 답사해 본 사람들은 크랙 중간에 약 5미터 정도 되는 슬랩을 만났는데 과연 아처가 이 슬랩을 올랐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때 함께 답사했던 분이 이런 설명을 합니다.
\'슬랩은 엄두도 못내고, 4-5미터 되는 장대가 당시 암벽등반 장비중 하나였지. 끝에 갈고리 모양이 달려 있어서 그걸 슬랩 위 어디 쯤 걸치고 올랐을 거야\'
또 다른 방법은 \'전설의 47기\'가 교장 선생님의 지휘하에 얼음으로 뒤덮인 참기름 바위를 올랐던 것처럼 인간 사다리 방식이 있었습니다. 3-4미터 되는 슬랩은 당시엔 등반 팀이 무등을 태워 선등자를 올려주었다네요.
이 정도니 우리가 슬랩 등반을 제대로 배운 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우린 최첨단의 등반법을 배우고 있는 거죠)
한편, 루트를 개척한 것과 초등한 것은 동일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우리가 자주 접근하는 인수 A, B 루트는 그보다 한참후인 1935년(인수 B), 1936년(인수 A)에 개척되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클라이머 써클 \'백령회\'의 김정태 씨가 인수 B를, 한국 산악회 박순만씨가 인수 A를 개척했다고 합니다.
그 후 인수봉의 암벽 루트는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우후죽순처럼 개척되었고
현재 총 82개 루트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를 루트엔 이 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대선배님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오른다면
좀 더 수월하게 오르지 않을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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