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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벽반을 등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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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동욱 작성일08-09-26 04:48 조회3,1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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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이수했어야 할 교양 필수 과목을
이제야 수강 신청 했습니다.

4년 전, 암벽을 배운 뒤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겨울을 넘기고서
다시 세월이 급류를 타는 바람에
어찌할 수도 없이 몇 해를 흘려 보내다
올 해들어 세월도 너무했다 싶었는지
보기드문 여유를 보여주어 이렇게 학교를 자주 나오게 되었지요.

저도 그랬지만 이 글을 읽는 동문 여러분 중 대다수는
암벽도 힘든 데 빙벽까지 한다는 건...하며 망설임이 많을 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등록하게 된 이유를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모든 등반가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빙벽을 해야...\'
하는 말입니다.
하다못해 인공암장에서 암벽등반의 기술과 근력을 가다듬었다고
자부하는 클라이머들 조차
\'아, 빙벽을 해야....\'라며
2%가 아닌 20%의 부족을 한탄합니다.

제가 수업시간을 통해 말씀드리는 것 중
등반력을 향상시키는 근육은 일상적인 운동이나 노동을 통해
형성된 근육과 다르다는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등반력이 좋은 분들을 가만 보면
핼스나 기타 운동을 통해 형성된 근육이 아님을 간파하셨을 겁니다.
(교장 선생님이 대표적인 예지요)

등반력과 관련된 팔 근육은
당길 때 사용되는 근력의 이두박근과
밀어 올릴 때 사용되는 근력의 삼두박근이
균형을 이루면서 형성되어야
유연한 등반력을 보장합니다.

그런데 이런 근력이 단순히 핼스나 턱걸이만으로는 보조적인 도움은 될지 모르나
완성에는 한참 못미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경험을 통한 결론입니다.

이런 결론이 해결점을 찾은 지점이 바로 빙벽입니다.

학교를 통해 암벽 등반을 접한 사람들 대다수는
슬랩 등반의 경험은 있지만 페이스 등반의 경험은 거의 없지요.

페이스란 90도 전후의 절벽을 오르는 겁니다.

2005년도 여름에 장수대 부근의 페이스를 기어 오르면서
60먹은 할머니의 유연한 등반을 보고 감탄하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역시 빙벽의 테크닉이 사용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빙벽이란 말 그대로
수직의 얼음 절벽을 말하는 겁니다.

이걸 오르내리면 비로소 수직의 공포와 좀 더 친숙해 지고
등반의 3대 요소라고 할 근력과 유연성과 발란스를
체득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여,
세월이 제게 여유를 주고 있을 때
재빨리 등록해서 빙벽에 확보줄을 메야 할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광활한 우주에서
녹색 혹성 지구의 무수한 생명체 중
인간으로 태어나
8피치 혹은 9피치를 등반하고 하강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그 인생의 등반 중에 체험할 것들은 가능한 많이 해 보는 것이
하강길에 허허롭지 않을 것이란
제 나름의 삶의 철학을 실천하고자 함이기도 합니다.

현재 암벽반 강사로 활동하고는 있지만
빙벽을 하지 않은 상태로는
왠지
절반만을 배워버린
미적지근함이 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었습니다.

남들의 두 세배 되는 군생활을 하는 동안
공수 낙하, 특수전, 특공무술, 생존, 전투수영, 화생방전, 산악기동 등등을
배웠지만
빙벽은 안 해본 이상 할 말이 없지요.

하여,
올 겨울, 하느님께 특별히 부탁중입니다.
부디
별 일없이 잘 배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다면
열심히 배워 볼 참입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계신다면
얼른
등록하시면 좋겠습니다.

왜냐면
빙벽 시즌이 시작되면 장비값이
100만원 정도 더 인상되기에
미리 예약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욱이 형 때문에 내가 이 밤에 왠 고생을..\"하면서
너 하나만의 길을 올랐던 허 모 선생도
후다닥 인출기에서 등록금을 찾아 등록한 한 장의 삽화는
우리가 평생 웃으며 회고할 자산이기도 하지요,

지난 해 늦은 가을,
병원에 입원하여 목숨 건 재 수술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살아 온 날들을 돌아보는 데
참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참 재미있게 살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열심히, 재미있게 살았는데 많은 돈이 소용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슴 뿌듯하게 다가왔습니다.

물질보다 정신이 우선했다는 제 삶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병동 옆엔 장례식장이 있었는데,
그 식장의 방 방 마다 모셔진 영정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며칠 전 삶의 등반을 끝내고 하강한 분들이지요,.

그 분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평생 모은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가 아니라
자신의 영혼의 배낭안에 들어간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들이란 것을 확인했었습니다.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니 하면서
원숭이나 지렁이를 깔 볼 수 있다면
그들보다 더 높은 정신세계를 구가할 수 있다는 점 외엔
뭐 다른게 있을까요.

우리가 등반을 하는 것도
일상속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도
느낄 수도, 그리고 깨달을 수도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우주의 비밀을
알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8년전, 남들이 다 부러워 하는 직업(기자)을
팍 때려 치우고
퇴직금중 일부를 과감히 떼어내
스쿠버 장비를 마련했었습니다.

부유층 신혼부부나 들른다는 인도양의 몰디브로
홀홀단신 도착해 보니
아, 이런 데가 실제로 있구나 하는 자각과 함께
수심 30미터의 세계를 직접 보는 순간
경험하지 않은 상상력은
보잘것 없는 지적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올 봄,
필리핀 사방 비치의 수중 세계에서는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발견한 기회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지난해 수술 대기실에 누워서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베스트 10을 꼽아 보았더니
돈을 많이 벌었거나
남과 경쟁해서 이겼던 경험이나
큰 상을 타서 부러움을 샀던 기억들은 순위권에서도 한 참 떨어진
볼품없는 파지에 불과했었습니다.

대신,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가슴 벅찬 기억들이
순위권에 가득 했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등반과 흡사할 진데
충만한 삶을 위한 등반이기를 위한다면
빙벽도 해 봐야 한다는 결론이
현재 제가 도달한 확보점입니다.

이상으로
빙벽반을 등록하면서
정리한 제 마음을 글로나마 올립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게시판을 혼란스럽게 한 \'공동1위\'와 관련한 적나라한 동영상을
개제합니다.

<현장:

23일 오후 10시 23분경, 종로 5가 꼼장어 집.
교장선생님, 교무님, 허용범 선생님, 송대관 선생님, 윤귀희 선생님(차 속에 대기),
이동욱.

둘러 앉아 대화가 무르 익은 가운데 이동욱은 말없이 일어서서 밖으로 나감.
차 속에서 지갑을 꺼내
편의점 인출기를 들러 다시 대화의 현장으로 들어 감.
이때 허용범 선수, 이런 말을 하고 있음.
\"아. 내일 오전에 제가 빙벽반 등록을 할 거라니깐요. 제가 제일 먼저 할 꺼라구요\"
교장 선생님 왈,
\"씨바, 매년 빙벽 하겠다고 하는 넘들 막상 빙벽시즌 되면 자기집에 뭔놈에 일이 생겼다며 슬며시 핑계들을 댄다니깐?
근데 수강료를 미리 낸 사람들은 그때가서 아무 일도 안생기는지 개강일만되면 쑥쑥 나타난다니깐! 참 이상하지^^ \"
\"글쎄 저는 내일 오전에 할 겁니다\"
바로 그 순간, 이동욱, 현금 다발을 교장 선생님 앞으로 쑥 내민다.
교장 선생님의 \'멍\'한 표정.
\"야, 이게 뭐냐?\"
이동욱, 담배를 입에 문 채 자리에 앉으며
\"그거 제 빙벽반 등록금이죠\"

이때부터 허용범 선수, 길길이 날 뜀.
\'이럴 수가 없다\" \"반칙이다\" \"그걸 선생님이 받으시면 안된다\"
\"국제등반규칙에 위배된다\"....등 등.

그러나 교장 선생님.
\"야, 너, 뭐, 이렇게까지...음. 알았다\"
며 허 선수에게는 눈길 한 번 안 주고 돈을 가방에 넣으신다.

그러자 허 선수.
\"아, 안 되겠다\"며 밖으로 달려 나간다. 입구에서 꼼장어집 여 주인과 마주치자 이런 말을 던진다.
\"아줌마,. 여기 카드로 인출할 때가 어디 있어요?\"

아주머니가 손가락을 들어 방향을 가르키며 설명하는 데
끝까지 듣지도 않고 달려 나간다.

<편의점>

인출기 앞에서 허 선수, 떨리는 손으로 두 번이나 단추를 잘 못눌러 재작동,.
겨우 만 원권 지폐 40장을 기계에서 꺼냈다.
바로 그 순간, 두 손가락 사이에 끼인 돈다발이 공중으로 \'푸-학\' 분출.
엄지와 집게 손가락 사이에 남은 것은 단 두 장.
나머지 서른 여덟 장을 기다시피하며
바닥에서 수거해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 14분 25초.

교장 선생님 앞으로 달려온 허 선수.왈,

\"공동 1위죠?!!!\"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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